설명충 박멸기
이진하 지음
열린책들 | 1만6000원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몹시 설명하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설명하게 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설명하고 싶은 마음은 내가 어찌할 수 없을 지경으로 커졌다. 길을 걷다 처음 보는 사람을 붙잡고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전봇대는 전선이나 통신선을 늘여 매기 위하여 세운 기둥입니다. 전봇대의 어원은 <전보>를 전하는 기둥이라는 뜻인데 알고 계셨나요?’”
<설명충 박멸기>(이진하)는 소설가 이진하의 엽편소설을 모은 작품집이다. 표제작은 어느날 주인공에게 갑자기 설명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증상이 나타나면서 시작한다. 주인공은 설명 때문에 동네에서 손가락질을 받고 여자친구와도 헤어진다. 정신과를 찾아 상담을 하고 뇌 MRI 사진도 찍었지만 도통 원인은 알 수 없었고 설명도 멈출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공은 감기 때문에 찾아간 이비인후과에서 그 원인을 찾아낸다. 의사는 혀뿌리 안쪽에 설명충이라는 새하얀 벌레가 붙어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설명충은 빛을 좋아해 숙주가 계속 입을 벌리도록 유도해 말을 하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설명충이 혀에 꼬리를 박아 기생하고 있어 제거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원인은 알았으나 치료법이 없어 주인공은 점점 홀로 고립돼간다. 그때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딱 한 사람이 나타났는데 바로 ‘도를 아십니까’였다. 그에게서 “타인의 반응과 무관히 지치지 않고 자신의 할 말을 하는 끈기와 열정”을 본 주인공은 그 또한 설명충을 갖고 있음을 간파하게 된다. 그는 주인공에게 설명충을 박멸한 사람이 딱 한 명 있다는 솔깃한 이야기를 전한다.
엽편소설 27편이 수록된 <설명충 박멸기>는 해악과 익살로 현시대의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설명충을 박멸하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