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척추, 헌재는 증명하라

2025.01.16 21:00 입력 2025.01.16 21:06 수정

최근 가수 나훈아의 작심 발언들은 흥미로웠다. 그는 고별 콘서트에서 “왼쪽이 오른쪽을 보고 잘못했다고 생난리를 치고 있다”면서 “오른쪽도 별로 잘한 것이 없다”고 했다. “별 단 장군들이 줄줄이 잡혀가고 있는데 어떤 군인은 질질 짜고 있다”고도 했다. 나훈아의 발언에 깔린 맥락은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가 거침없이 이 같은 발언을 내뱉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했다. 만약 지난해 12월3일 밤 위헌적인 비상계엄이 성공했더라면 지금쯤 그는 남태령 지하벙커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함께 포박돼 있었을지도 모른다. 포고령 1호 4항은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행위를 금한다”이다.

국민의힘이 16일 이른바 ‘카카오톡 검열 금지법’을 발의한 것도 흥미로웠다. 민주당에서 카카오톡 등을 통해 가짜뉴스를 퍼나르는 일반인도 내란 선동으로 고발하겠다고 밝힌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민주당의 주장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가짜정보를 무분별하게 퍼나르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 핵심으로 보이지만,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국민의힘의 뛰어난 ‘인권 감수성’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이 성공했더라면 국민의힘은 높은 인권 감수성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포고령 2항은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선동을 금한다”였다. 앞선 1항은 “국회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였다.

계엄은 민주주의 절차를 일거에 멈춰서게 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수단이다.

마침내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체포됐다. 하지만 끝난 것은 아니다. 듣자 하니 용산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을 자신하고 있다고 한다. 헌재의 구성을 볼 때 믿을 만한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헌재는 공수처, 검찰 수사를 바탕으로 비상계엄의 요건과 절차를 지켰는지, 국회 의결을 무력으로 방해하라고 명령했는지 등 여러 사안을 법리적으로 따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공방이 오가겠지만, 헌재 탄핵심판의 본질은 단순하다. 계엄을 대한민국 대통령의 통치수단으로 인정할 것이냐, 말 것이냐다.

만약 헌재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기각한다면 앞으로 대한민국은 정권을 잡는 사람이 총칼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게 된다. 군경은 목숨 걸고 정권에 줄을 설 것이고, 몇번 정권이 오가다보면 군경이 스스로 정권을 잡으려 할지도 모른다. 총칼이 지배하는 나라, 이런 나라를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지난 6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과 회담을 가진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윤 대통령이 ‘반국가적인 전복 세력이 있다’면서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는데, 북한·러시아·중국 같은 나라의 독재자들의 전략과 비슷하다. 왜 대한민국이 이런 적국과 비슷한 방향으로 간 것이냐”는 외신기자의 질문을 받아야 했다. 선진국 시민들의 눈으로 보기에 윤 대통령은 김정은, 푸틴, 시진핑 등과 같은 급의 인물로 인식되고 있다는 얘기다.

민주주의는 인류가 만든 가장 이상적인 정치체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좁은 회랑’이라고 불릴 만큼 완성하기 어렵다. 민주주의는 이상적인 민중과 위대한 지도자가 만들어내는 걸작품이지만 이 중 하나라도 잘못되면 ‘타락한 정치체제’로 돌변할 수 있다고 플라톤은 경고했다. 그 어려운 것을 우리가 해냈기에 대한민국은 G7 국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으며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선진사회는 한국이 이룬 민주주의를 의심하고 있다. 그 의심의 눈초리를 다시 신뢰로 바꾸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파괴자에 대한 철저한 응징이 필요하다. “필리핀이나 남미에서 쿠데타가 잦았던 이유는 반란군 수괴들을 엄벌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 보수언론인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의 의견에 고개를 크게 끄떡이는 이유다.

헌재는 그 응징의 중심에 서 있다. 헌재의 심판 결과 대한민국은 미국·일본·유럽 모델로 가느냐, 북한·러시아·중국 모델로 가느냐가 결정된다. 스페인 사상가인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저서 <척추 없는 에스파냐>에서 지식인층과 정치엘리트들이 책임감을 잃고 국가를 통합하거나 미래를 이끌어가는 데 실패한 것이 에스파냐가 몰락한 이유가 됐다고 했다. 헌재는 대한민국의 쇠퇴를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번영의 불씨를 다시 지필 것인가. 대한민국은 무척추동물이 아님을 헌재가 증명해야 할 시간이다.

박병률 콘텐츠랩부문장

박병률 콘텐츠랩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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