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으며 굳게 다짐했던 살을 빼겠다는 결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빛이 바랠 위험에 처한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는 물론이고 신문 어느 면을 봐도 속 시원한 소식은 찾기 어려워 답답하니 ‘먹는 게 남는 것’이란 과거의 금과옥조를 다시 떠올리기 쉽다. 그동안 줄여왔던 식사량이 있으니 하루 정도는 먹고 싶은 음식을 양껏 먹는 ‘치팅 데이’로 보내도 되지 않을까 싶은 유혹도 슬금슬금 밀려온다. 그러나 적어도 ‘남은 인생에서 오늘이 최고로 뚱뚱한 날’이 되게 하고 싶다면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이미 비만 또는 과체중이거나, 비록 체질량지수(BMI)만으로는 정상에 해당하더라도 체지방 비율이 적정 수준을 넘겼을 경우엔 몸에 붙은 지방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건강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체지방은 크게 나누면 몸 곳곳의 피부 아래 자리잡은 피하지방과 복강 내 장기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내장지방으로 구분한다. 피하지방은 배 외에도 팔이나 허벅지, 얼굴 등에 고루 분포해 있으면서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은 비교적 적은 데 비해 내장지방은 과도하게 축적될수록 위험도 역시 높아진다.
체지방을 줄이려 노력할 때 특히 뱃살에 신경 써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내장지방에 있다. 허리둘레를 측정해 남성은 90㎝, 여성은 85㎝ 이상이면 내장지방 축적으로 인한 복부비만을 의심해볼 수 있다. 양발을 25~30㎝ 정도 벌리고 편하게 서서 숨을 내쉰 상태로 갈비뼈 가장 아래 지점과 골반뼈의 가장 높은 지점 사이 가운데를 줄자로 재면 된다.
한국인은 특히 불룩 나온 뱃살이 피하지방보다 내장지방 때문일 경우가 많은 편이다. 팔다리는 근육도, 지방도 적어 가늘면서 배만 튀어나온 경우가 여기 해당한다. 오한진 대전을지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이런 경우 컴퓨터단층촬영(CT)으로 찍어보면 거의 내장지방이 늘어난 사례”라며 “특히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먹는 양이 줄어들어야 맞는데, 오히려 더 잘 먹다 보면 에너지 섭취량은 늘고 몸에서 쓰는 양은 줄기 때문에 뱃살이 더 많이 늘어나며 빼기는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고 설명했다.
한국인 10명 중 3명이 과체중·비만
고혈압·당뇨 등 대사성 질환 유발
식사량 줄이는 것이 우선
운동도 필수…빠르게 걷기·수영 효과적
복부비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질병을 부르기 때문이다. 고혈압, 제2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등의 대사성 질환을 일으키는 주요한 요인이 되며 심장질환이나 뇌졸중 같은 심혈관계 질환까지 유발할 수도 있다. 암 발병과도 관련이 있어 여성에겐 유방암이나 자궁내막암 위험을 높일 수 있고, 대장암과 췌장암 등은 성별과 무관하게 복부비만이 있으면 더 잘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비만은 치매와도 관련이 있다. 비만은 전신의 염증반응을 촉진하는데, 염증세포는 혈액을 타고 뇌로 가서 신경세포를 자극해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최신 연구에서도 비만을 비롯해 고혈압과 이상지질혈증 등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대사증후군 증상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장지방 축적으로 복부비만이 나타나면 단순히 배가 나오는 데 그치지 않고 핏속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 작용에도 영향을 미쳐 당뇨병 위험을 높이며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의 기능 저하를 유발한다. 또한 혈당 외에도 혈액 중 지방의 농도 역시 높아진 탓에 고혈압과 고지혈증, 동맥경화까지 차례대로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협심증과 심근경색 등 심혈관계 질환은 물론 신장에도 지속적인 부담이 가해져 발생하는 만성 신장 질환까지 비만의 여파는 광범위하다.
이 같은 내용의 연구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리뷰’에 게재한 임수 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국내에서 과체중 및 비만에 해당하는 비율은 전 국민의 30%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며 “이들이 개별적인 질환이 아니라 대사증후군을 기본으로 상호 연관된 만성질환임을 인지하고 맞춤형 통합적인 진단 및 치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체계적인 제도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가 2021년 비만을 질병으로 규정했듯 이미 비만에 해당한다면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는 인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비만 기준에 들진 않더라도 체중과 체지방을 줄여야 할 상태라면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을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식습관과 운동 및 신체활동을 점검하는 것이 좋다. 나이가 젊다면 숨을 쉬고 체온을 조절하며 심장을 뛰게 하는 등 기본적인 생명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쓰이는 기초대사량이 높아 식사량만 조금 줄여도 비교적 빠르게 반응해 살이 금방 빠진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기초대사량은 점점 줄어든다. 대체로 40대에 들어서면 눈에 띄게 기초대사량이 감소한 상태가 된다. 중년기를 지났다면 더 본격적이면서 지속할 수 있는 체중 관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체지방을 줄이려면 식사량을 줄이는 것이 우선이다. 체지방 1㎏을 칼로리로 환산하면 7700㎉ 정도가 된다. 흰밥 한 공기(300㎉)에서 3분의 1씩 하루 세 끼마다 덜어서 약 300㎉의 열량을 줄일 수 있으니 이렇게 26일을 유지하면 지방 1㎏을 뺄 수 있는 셈이다. 다만 단순히 숫자로 계산하는 것과 달리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특히 겨울철 대표적인 간식인 붕어빵, 호떡, 찐빵, 어묵 등은 대체로 탄수화물과 당분 함량이 높아 한두 개만 먹어도 그날의 열량 감소분을 반납하기 십상이다. 허기를 달래야 할 땐 섬유질이 풍부한 각종 채소를 많이 섭취해 포만감을 높일 수 있다. 닭가슴살이나 돼지 안심 등 지방이 적고 단백질 함량이 높은 부위를 요리에 적극 활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최근 다이어트용으로 곤약 등 열량이 매우 낮은 재료로 만든 식사나 간식이 많이 출시되고 있으니 이런 제품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
운동도 필수적이다. 특정 부위를 단련하는 운동을 한다 해서 그 부위의 지방만 선택적으로 빠지는 것은 아니므로 전신을 고루 사용하면서 유산소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운동이 가장 좋다. 오한진 교수는 “뱃살을 빼겠다며 윗몸일으키기만 한다고 한들 뱃살이 눈에 띄게 빠지진 않는다. 빠르게 걷기, 수영, 자전거 타기 등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며 “근육이 많이 있어야 기초대사량이 늘기 때문에 유산소 운동뿐만 아니라 스쾃, 아령 운동 등 근력운동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