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내란 수괴(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됐다. 윤 대통령은 법정에 직접 출석해 계엄의 정당성을 강변했지만 헌정사상 최초로 구속된 현직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피하지 못했다. 윤 대통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검찰의 후속 수사를 거쳐 2월 초쯤 재판에 넘겨질 전망이다.
서울서부지법 차은경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2시50분쯤 윤 대통령에 대해 공수처가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을 선포해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권능을 마비시킬 목적으로 군·경찰을 동원한 폭동을 일으킨 혐의(내란우두머리·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를 받는다.
윤 대통령 측과 공수처는 전날 오후 2시부터 오후 6시50분까지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프레젠테이션(PPT) 자료 화면을 띄워놓고 치열한 법리 공방을 벌였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공수처에 체포될 당시 입은 정장 차림으로 법정 중앙에 앉았다. 윤 대통령은 오후 4시35분부터 5시15분까지 40분간 발언, 마지막 5분간 최종 발언에서 “계엄은 정당했으며 불가피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윤 대통령 측에선 김홍일·윤갑근·송해은·석동현·차기환·배진한·이동찬·김계리 등 변호사 8명이, 공수처 측에선 주임검사인 차정현 수사4부장을 비롯한 검사 6명이 출석했다.
윤 대통령을 구속한 공수처는 이날 오후 2시 조사에 출석하라고 통지했지만 윤 대통령 측은 “공수처에 더 말할 것이 없다”며 불응했다. 공수처는 20일 오전 10시 조사에 재차 출석을 요구하고 윤 대통령이 이번에도 불응하면 조사실에 인치(강제 구인)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사실상 최후 통첩”이라며 “판례상 인치에 법적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윤 대통령에게 유의미한 진술을 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첫 조사 내내 진술거부권(묵비권)을 행사하고 피의자신문조서에 서명·날인도 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은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법치가 죽고 법 양심이 사라졌다”며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울 정도의 엉터리 구속영장이 발부됐다”고 반발했다. 이에 대해 공수처는 “구속영장 발부는 범죄 혐의가 소명되는 것이 전제 조건”이라며 “법치를 부정하는 입장문을 낸 것에 심히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은 체포 때처럼 구속에 대해서도 법원에 적법성을 다시 판단해 달라고 구속적부심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공수처는 형사소송법상 최대 구속기한 20일의 절반인 10일 가량을 사용하고 기소권을 가진 검찰에 윤 대통령 신병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은 이미 ‘중요임무종사자’ 군·경찰 지휘부 10명의 구속 기소를 마쳤고 ‘우두머리’에 해당하는 윤 대통령에 대한 고강도 조사 태세를 갖췄다. 검찰은 보완 수사를 거쳐 윤 대통령의 구속기한이 만료되는 다음달 초 구속 기소할 계획이다. 다만 윤 대통령이 구속적부심을 청구하면 그 기간 만큼 기소 시점이 미뤄진다.
윤 대통령은 서울구치소에 계속 구금된 상태로 공수처·검찰 수사와 향후 열릴 형사재판을 받는다. 윤 대통령은 체포 이후 ‘구인 피의자 대기실’에서 사복(정장)을 입고 생활했다. 하지만 이날 구속영장이 발부된 만큼 다른 미결수와 똑같이 정밀신체검사를 받은 뒤 수용자복을 입고 일반 수용실로 옮겨야 한다. 안전 문제 때문에 독거실(독방)이 배정되고 현직 대통령 신분이라 경호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