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12·3 비상계엄 선포 당일 최상목 당시 경제부총리(현 대통령 권한대행)가 받은 ‘비상입법기구 설치 쪽지’에 대해 “내가 썼는지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이 쓴 것인지 기억이 가물하다”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은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비상입법기구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계엄 선포 이후 비상입법기구를 창설할 의도가 있었는지’를 묻는 차은경 서부지법 영장 당직 부장판사의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고 한다. 이 질문은 차 부장판사가 심사 당일 윤 대통령에게 한 유일한 질문이었다.
비상입법기구란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직전에 열었던 국무회의에서 최 권한대행에게 전달한 쪽지에 담긴 내용이다. 쪽지에는 ‘조속한 시일 내에 예비비를 확보할 것’과 ‘국회 관련 각종 자금을 끊으며 국가 비상 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마련하라’는 지시가 적혔다. 윤 대통령의 발언 취지를 놓고 김용현 전 장관에게 책임을 미루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공수처는 이 쪽지 내용이 ‘경고성 계엄’이라는 윤 대통령 측 주장을 깰 핵심 증거라 보고 있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조치사항들이 구체적으로 명시돼있는 쪽지 내용을 보면 단순 경고성 계엄에 그친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공수처는 윤 대통령의 구속영장 청구서에 내란 혐의와 관련해 ‘사실상 확신범’이라는 표현을 적시했는데, 이 표현의 근거도 최 권한대행에게 건넨 쪽지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공수처는 경찰로부터 이 쪽지의 내용을 모두 확보한 상태다.
또 공수처는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1차 체포영장 집행 당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공관촌 일대에서 윤 대통령이 탑승한 것으로 추정되는 차량 등 여러 대가 보안구역 내 다른 공관으로 이동한 정황을 들어 ‘도주 우려’ 사유로 언급했다. 계엄 선포 이후 텔레그램 삭제 정황 등도 들었다.
공수처는 이어 윤 대통령의 재범 위험성 사유로 ‘2·3차 계엄 선포 가능성’을 거론했다고 한다. 얖서 김 전 장관의 공소장에는 윤 대통령이 계엄을 추가 선포하려 했던 정황이 담겼다. 공소장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요구안이 가결된 이후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에게 전화해서 “(비상계엄이) 해제됐다 하더라도 내가 두 번, 세 번 계엄령 선포하면 되는거니까 계속 진행해”라고 지시한 것으로 적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