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민주주의

2025.01.19 20:40 입력 2025.01.19 20:47 수정

도종환 전 의원의 추천으로 오장환 시인의 ‘병든 서울’을 읽으며 병든 민주주의를 생각했다. “인민의 힘으로 되는 새 나라”를 꿈꿨던 시인은 ‘해방 정국’이 기대와 달라지는 것에 화가 났다. “짐승보다 더러운 심사에/ 눈깔에 불을 켜들고 날뛰는 장사치와/ 나다니는 사람에게/ 호기 있이 먼지를 씌워 주는 무슨 본부, 무슨 본부,/ 무슨 당, 무슨 당의 자동차”만 살판이 난 것처럼 보였다. 당과 본부들이 상대를 잡아먹을 듯하더니 결국 인민을 분열시키고 나라를 적대로 분단시켰다. 한국전쟁 이듬해, 시인은 “내 눈깔을 뽑아 버리랴, 내 씰개를 잡어떼어 길거리에 팽개치랴”며 개탄하듯 세상을 떠났다. 그때 못지않게 지금의 우리 민주주의도 병들었다고 말하면, 지나친 일이 될까.

윤석열과 이재명이 맞붙었던 지난 대선을 당시 사람들은 “비호감 선거”라 불렀다. 신념과 대의는 고사하고 그럴듯한 정책 논쟁도 없이 서로의 범죄 요건만 거론하다 끝난 선거였다. 그때 이후 한국 정치는 도무지 정치 같지가 않았다. 처음엔 정치를 왜 이렇게 못하나 하고 생각했다. 조금 지나서 돌아보니, 착각이었다. 애초 그들은 정치 같은 것을 할 의사가 없었다. 대통령은 정치를 혐오했다. 야당은 탄핵을 반복했다. 서로가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려 했다. 그러다 망상에 빠진 대통령이 황당한 선택을 했다.

국회가 계엄을 해제시켰을 때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기적같이 다시 살아났다. 야당이 있고 국회가 있는 것이 얼마나 민주적인 일인가도 실감했다. 사람들은 불안감을 덜어내며 희망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변화의 정치가 재개되길 기대했다. 신뢰의 눈길은 계엄 해제를 주도한 야당에 쏠렸다. 권위를 잃은 여당 대신 야당이 여당 역할을 해야 할 비상한 시국이라 여겼다. 조사와 처벌은 논란 없이 진행하고, 정국의 불확실성은 안정적으로 해소해주길 희망했다. 이를 위해서도 정치의 역할이 살아나길 기대했다. 한 달도 안 되어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욕설과 비아냥이 추앙받는 현실

야당은 책임감을 갖기보다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 조바심을 냈다. 이 기회에 상대를 더 몰아붙여야 한다며 일방적으로 독주했다. 사회가 분열하든, 시민이 적대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세상을 적폐세력과 적폐척결세력으로 단순화했던 과거의 반(反)정치 담론이 이번에는 내란세력 척결론으로 부활했다. 윤석열 집단만이 아니라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모두를 내란옹호자나 내란동조 행위로 적대시했다. 통합의 정치 언어가 필요할 때 배제와 조롱, 야유가 또 동원되면서 사람들은 다시금 혼란스러워했다. 소음과 먼지가 가라앉았을 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전보다 더 분열된 한국 민주주의였다.

17세기 중반 잉글랜드 내전을 겪으며 새로운 국가 이론을 발전시켰던 토머스 홉스는, 무엇이 옳은지를 합의할 수 없게 된 사회를 가리켜 ‘자연상태’라 불렀다. 그런 사회에서 선악의 법칙은 단순해진다. 내가 욕구하는 것은 선(善)으로, 상대가 욕구하는 것은 악(惡)으로 다루면 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정치와 시민사회가 그런 형국이다. 정치에 대한 생각은 함께 나눌 수 없는 것이 되었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시민사회 같은 것은 거리를 양분하는 당파적 열정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욕설과 비아냥이 추앙되고, 신중한 고려와 상대에 대한 배려가 경멸받는 현실이 되었다. 대화할 수 없는 양당제,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양당제는 정치인보다 유튜버가 더 신뢰받는 민주주의를 가져왔다.

정치가 공익을 둘러싼 경쟁이 아니라 누가 먼저 죽느냐를 둘러싼 권력 투쟁으로 병들었는데, 지지자들의 마음이 온전할 수는 없었다. 어느 정당이든 한 가지 의견만을 허용하는 배타적 지지자 무리가 지배한다. 이견은 억압되고 굴종이 강요된다. 토론은 사라졌고 규탄만 남았다. 획일화된 당 문화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다양한 견해가 전체를 더 풍요롭게 하는 정치 에너지로 존중될 리도 없다. 당내 다원주의는 질식되었다. 독단과 억지 주장만 남은 양당이 정치 없는 민주주의를 이끌고 있다. 민주주의에서 정치가 빠지자, 자신들만 옳아야 하는 전체주의적 열정이 힘을 얻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는 큰 병이 들었다.

토론 사라지고 규탄만 남은 사회

정치란 우리가 서로 다르기에 불러들여진 인간 활동이다. 우리가 같아질 수 있고 늘 합의할 수 있었다면 정치는 없어도 될 일이었다. 민주주의는 이견을 필요로 한다. 같은 음식만 먹는 일상이 건강할 수 없고,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만 주변에 있으면 실수를 막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여러 다름과 갈등 속에서도 공동체의 길을 보듬고 가꿔 갈 수 있다고 믿는 정치가가 정치를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그런 정치가가 없다는 것이 상황을 더 어렵게 한다. 전보다 더 적대하는 민주주의, 갈수록 더 비호감인 대선이 또 다가오고 있다.

박상훈 정치학자

박상훈 정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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