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 탄핵심판 이후를 걱정하는 이유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 100여명이 법원에 난입해 난동을 부린 사태의 배경에 윤석열 대통령과 정치권의 행태가 자리잡고 있다는 비판이 20일 법조계에서 쏟아졌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법관 성향 등을 문제 삼는 이른바 ‘사법부 흔들기, 판사 좌표찍기’의 폐해가 현실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사법부 흔들기가 폭력 난동으로 이어진 이번 사태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 이후에도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법원 판결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청사 안에 난입해 난동을 부린 건 민주화 이래 처음이지만, 사법부 판단에 불만을 품은 개인과 집단의 공격은 꾸준히 있었다. 2007년 1월 판결에 불복해 저지른 ‘판사 석궁테러 사건’이 대표적이다. 2019년 이른바 ‘조국 사태’ 때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구속영장 발부 판사를 향해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지난해엔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에서 정부의 손을 들어 준 서울고법 재판장에 대한 신상털이식 공격이 있었다.
이번 사태는 대통령과 여당이 합심해 ‘사법부 흔들기’에 전념함으로써 사실상 판을 깔아준 것이나 다름 없다.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법적,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 심리를 시작하고 수사기관이 수사를 본격화하자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책임을 부정하기에 급급했다. 이 과정에서 법원과 수사기관의 법적 판단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발언이 공공연하게 쏟아졌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출석 요구에 불응한 윤 대통령은 서울서부지법에서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불법”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과 여당은 체포영장을 발부한 서부지법에 야당이 헌법재판관으로 추천한 후보자가 근무하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서부지법이 윤 대통령 체포영장을 발부했다는 취지로 비난하기까지 했다.
이와 같은 사법 절차에 대한 부정이 서부지법 난입·폭력 사태로 나타났다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형법상 중범죄에 해당하는 폭력 난동 사태를 벌인 윤 대통령 지지자들을 “애국시민”이라고 칭송했다. 서울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20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여당에서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면서 서부지법 사태를 부추겼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가장 큰 책임은 여당에 있다는 점을 짚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부장판사는 “대통령이 사법부를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계속 내놓고, 여당이 부추기는 상황이 매우 우려스럽고 어떤 선이 붕괴한 것 같은 느낌”이라며 “더 큰 걱정은 (대통령과 여당이) 앞으로 나올 각종 법원 판단과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에 대해 불복하고 저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명세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2016년에 발간한 논문에서 “사법부 독립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적 조건”이라고 지적했다. 사법부 독립성은 자율성이 전제돼야 하고, 자율성은 “법관의 판결이 외부의 압력과 개입이 없을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판사 좌표찍기, 사법부 흔들기가 횡행하는 환경에선 법관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못하거니와 사법부 독립도 위태롭다는 의미다. 강 연구위원은 권위주의 체제는 지도자 뜻을 거스르는 사법부를 용인하지 않는데, 이는 민주주의 체제와 다른 점이라고 지적했다. 강 연구위원은 “실질적으로 사법부를 강화하는 요인은 민주주의의 정도”라고 밝혔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앞장서고 그의 측근과 여당 인사들이 계속해서 사법 절차를 무시하고 불신을 조장하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이번 사건은 민간 지지자들을 선동해 법원에 난입하도록 유도한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폭력사태에 가담한 이들에 대한 엄벌을 통해 탄핵심판 결정에서 되풀이되지 않도록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