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와 신뢰 회복의 길로 가라

2025.01.20 21:15 입력 2025.01.20 21:21 수정

[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권위와 신뢰 회복의 길로 가라

이재명 대표는
더 넓은 시야와 보폭으로
현 상황에 대응하고
사법리스크와 악마화도
넘어서는 결기 보여야 한다

꽤 먼 우회로 선택하는 게
더 크고 강한 승리를
가져올 수 있음을 명심하고
플랜 B도 계획해야 한다
이때 새 권력구조 구상하고
또 그것을 통로로 삼아
시민 관여와 통제력 높이는
정치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

그 방식이 무엇이든
대권 가능성 제고도 그렇고
현 정국 타개와
새로운 공화국 건설이
거기서 시작될 수 있다

12·3사태 이후 정국 혼란의 핵심 문제는 헌정 체제의 유지와 쇄신을 가능케 할 권위의 파탄과 신뢰의 붕괴다. 현재의 혼란은 권위와 신뢰를 복원해야만 그칠 수 있다. 6공화국 혹은 1987년 체제의 낡음과 병폐도 그래야만 혁신하고 치유할 수 있다.

극우파로 불리는 윤석열 극렬 지지층이 폭력을 행사하며 서부지방법원을 침탈했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권위에 이어 사법부 권위도 이제 정면으로 위협받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윤석열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의 신변 안전마저 우려될 지경이다. 극우파의 사법부 침탈은 헌정 수호를 위해 탄핵에 찬성하는 다수 시민이 기대하고 예상했던 바와 다르게 흘러온 상황의 집약이다. 국회의 신속한 비상계엄 해제와 탄핵소추, 그리고 응원봉 시민의 빛으로 환해졌던 한국 민주주의가 극단주의와 폭력이라는 짙은 어둠 속으로 빠져드는 순간이기도 하다. 헌정 파괴의 기운이 만만치 않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사법부의 권위는 결코 높았다고 할 수 없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도, 독재정권 시대에도 사법부는 신뢰받는 권력기관이 아니었다. 민주화 이후에는 다소 달라졌다. 사법부 오욕의 역사를 인정하고 자성하며 ‘사법살인’ 등으로 불리던 과거사 문제에 대한 재심 판결 등을 통해 쇄신의 모습을 선보인 덕분이었다. 그런데 정치의 사법화가 심화되면서 발목이 잡혔다. 대형 정치적 사건의 ‘최종 심판자’가 되면서 싫든 좋든 양극화된 정치 갈등의 한복판으로 빨려들어갔다. 그 와중에 박근혜 정권 때를 거치면서는 사법농단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되는 사태까지 겪었다. 극우파의 이번 사법부 침탈 사태는 사법부의 낮은 권위와 정치 사법화의 폐해가 혼란한 정국을 계기로 극적으로 표출된 것이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폭력은 안 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사법부의 권위를 지켜주기 위함이 아니라 정략 차원에서 그리한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재판과 구속을 촉구하며 사법부를 압박하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이재명 대표와 김부겸 전 국무총리 등 야당 정치인이 사법부 침탈은 민주공화제를 위협하는 행위라 경고하며 사법부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상황을 개선하는 데, 제어하는 데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해법의 제시가 아닌 공자님 소리이기에 사람들의 마음에 가닿지 못한다.

한국은 대통령제(행정부)와 사법부 모두 권위와 신뢰를 갖지 못하고 있는데, 지위가 부여한 권력을 보유하고 행사하면서 위기에 빠져들었다. 이런 상태에서 법치주의라는 규범의 준수를 재강조하는 것은 공허하다. 또한 이런 상태가 사법절차의 이행과 선거 승패만으로 개선 혹은 개악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정략적 유불리에 따른 의도적 무지함 혹은 무책임이다.

‘복잡계로서의 여론 지형’ 조성

윤석열 정권 세력의 대응은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 때와 다르다. 완강한 버티기를 넘어 공세적 태도를 취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공격의 대상은 자신들이 헌정 문란 세력으로 규정하는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윤석열 정권 비판 세력이다. 단지 윤석열 탄핵 반대만이 아닌, 비상계엄을 통한 내란 기도라는 헌정파괴 시도마저 -오히려 헌정수호를 위한 것이라며- 정당화하고 옹호하는 세력이 집권여당 국민의힘의 주도권을 잡고 있다. 사법부를 침탈한 광장의 극우파와의 거리도 가깝다. 극우파는 윤석열의 주도로 함께 싸울 동지로 호명된다. 윤석열 구속을 빌미로 사법부를 침탈한 후 ‘애국시민’으로 불리기까지 한다. 그런데도 정당 지지율에서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을 앞질렀다. 보수층 과다표집 논란이 있었지만, 유사한 조사 결과가 이어지면서 지지율 역전이 현실에 부합한다는 걸 수용하는 시각이 우세해졌다. 헌정 수호와 탄핵에 찬성하는 것만으론 지지를 얻지 못함을, 또 내란을 기도해 헌정을 파괴하고 탄핵에 반대해도 지지를 얻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그야말로 ‘복잡계로서의 여론 지형’이 조성되어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이 만들어진 이유는 열성 지지층을 제외한 다수 시민에게 양대 정치세력이 신뢰감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당민주주의는 부분에 기초해 전체를 지향하는 실천이다. 특정 지지층에 의존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과 같은 지위 권력을 획득한다. 하지만 권력을 특정 지지층을 넘어선 다수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양대 정당은 그런 정치를 추구하는 세력이 아니다. 모두가 자신의 옳음만을 조명하고 강변하며, 상대의 그름을 들춰내 부각하려 한다. 때때로 그것이 맞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조차 믿음을 주지 않는다. 옳음을 내세우는 목적과 자신의 맞음을 활용하는 방식이 결국 자신의 지위 권력 획득을 위한 선거 승패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정치 담론과 행태의 초점이 신뢰감 형성이 아닌 지지율 상승과 하락, 그리고 그것에 영향을 준다고 여겨지는 자신의 옳음과 상대의 그름에 맞춰져 있다. 정권을 획득하면 정말 지금 같은 정치적·사회경제적 혼란을 겪지 않게 할 수 있는 가치와 규범과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 또 그것을 구현할 의지가 있는지 등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답을 요구하고 있는데도 그리한다.

특히 현 정국에서는 수권 세력을 자임하는 정치세력, 즉 더불어민주당이 탄핵 찬성 시민 다수에게조차 신뢰감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중요하다. 탄핵 찬성 시민 상당수가 이재명이 이끄는 민주당과 그의 리더십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사법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당을 사유화하고 방패로 삼고 있으며, 대통령이 된 후에는 정치 보복을 자행하며 또다시 불안한 정국을 조성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불식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이 탄핵에 찬성하고 계엄사태를 내란으로 보는 데 동의하던 때에도 이재명 대표에 대한 신뢰도(신뢰한다 41%, 신뢰하지 않는다 51%)가 그에 크게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한국갤럽 2024년 12월10~12일 조사 기준).

정치위인의 등장 보고 싶다

국민의힘이 윤석열 구속 이후 개헌 논의에 불을 댕기려고 한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냉담한 입장을 밝혔다. 윤석열 탄핵완결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타당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사법부의 권위와 신뢰마저 무너진 판국이다. 헌법재판소(57%), 법원(46%), 공수처(15%), 검찰(22%), 경찰(47%) 모두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 탄핵 반대자 중 64%는 헌법재판소마저도 신뢰하지 않는다. 또 탄핵 찬성 여론마저 감소하고 있는 상태다. 탄핵소추 이전(79%)에 비해 11%가 줄었다(한국갤럽 2025년 1월7~9일자 기준). 탄핵 인용 후에도 혼란이 계속될 공산이 크다. 그래서 정국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전향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를 통해 윤석열에 대한 탄핵 인용과 형사 처벌의 정당성을 제고하고, 수권 세력의 권위와 신뢰를 형성할 계기를 확보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개헌에 대한 소극적 태도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유효하지도 않다.

이재명 대표는 여전히 장래 정치지도자 선호도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 안주할 때가 아니다. 윤석열 구속으로 조기 대선 국면이 조성되기에 앞서 이미 국민의힘에 의해 내란 기도와 탄핵마저 정략의 문제가 되어온 상황이다. 이런 때에는 더 넓은 시야와 보폭으로 대응해야 한다. 헌정 체제의 유지와 쇄신을 가능케 할 권위와 신뢰 복원에 초점을 맞추고 6공화국과 1987년 체제의 낡음과 병폐도 혁신하는 데에 주력해야 한다. 자신의 사법리스크도 적극 감수하는 결기를 보여야 한다. 사법리스크 자체도 그렇지만, 그것을 빌미로 한 윤석열 정권의 자신에 대한 과도한 악마화에 큰 억울함과 화가 있을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그러했듯이 위협을 느끼는 강력한 도전자에 대한 악마화는 국민의힘 같은 정치세력의 전형적 레퍼토리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힘은 대권 차지 그 자체에서 나오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전체를 지향하며 자신의 살점을 떼어주는 희생과 양보를 통한 신뢰감 형성과 그에 따른 권위의 조성에서 나온다. 꽤 먼 우회로를 선택하는 게 더 크고 강한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고 플랜 B도 계획하고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현 정국에서 유일하게 신뢰도가 급상승한 국회의 위상과 역할에 주목하는 방향에서의 권력구조 개편을 구상할 수도 있다. 또 그것을 통로로 삼아 시민의 관여도와 통제력을 높이는 정치체제를 구축할 수도 있다. 그 방식이 무엇이든 대권 획득의 가능성 제고도 그렇고, 현 정국의 타개와 새로운 공화국의 건설이 거기서 시작될 수 있다. 이를 주도하고 책임지는 데에서 권위와 신뢰를 만들어가는 정치위인의 등장을 보고 싶어 하는 말이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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