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역 7번 출구 앞에 3층짜리 커다란 횟집이 생겼다. 수산 식품만 팔았지 식당 운영은 처음인 게 대부분인 30여 명이 모여 생선을 썰고, 탕을 끓이고, 손님을 맞이한다. 어느덧 가족보다 자주 보게 된 얼굴이지만 오늘도 본다는 사실이 여전히 반갑다. 주름진 손은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인다. 칼을 벼리고, 새 식탁보를 깔고, 밑반찬의 간을 보며 영업을 준비한다.
지난 10년간 전기와 수도가 끊긴 시장에서, 노량진역에서, 육교 위 천막에서 현대화된 노량진수산시장 ‘살아 숨 쉬는 바다’를 지켜보던 옛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이 노량진 회센터 ‘도심 속 어촌 마을’을 꾸리기로 했다. 바다보단 작지만 우리가 흩어지지 않고 뭉칠 수 있는 곳, ‘장사도 투쟁’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쫓겨난 상인들의 2막이 오른 것이다.
2016년 현대화 사업이 추진되면서부터 사업 주체인 수협과 구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은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임대료 등을 이유로 구 시장에 남기 원하는 상인들과 수협 간 갈등이 봉합되지 않은 채 구 시장은 철거됐다. 2019년까지 10차례 진행된 명도 집행으로 상인들은 살림살이가 거덜 났다. 수협이 제기한 손해배상 판결은 지난해 11월 노량진수산시장시민대책위 집행부의 책임으로 최종 마무리됐다.
100여 명 정도 남았던 옛 상인들은 이제 48명뿐이다. 오래된 투쟁은 동력을 잃는다. 앞날에 대한 고민에 빠졌을 때 윤헌주 노량진수산시장현대화 비상대책총연합회 위원장이 다 같이 식당을 운영해보자고 제안했다. 함께 일하고, 함께 투쟁하고, 더불어 먹고 사는 ‘공공운영’을 우리가 해내 보자고.
“이제 더는 우리에게 오는 관심이 없잖아요. 외로운 시기가 와요. 다들 그거에 대해선 덤덤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이대로 끝내면 ‘그러게 왜 싸워! 당신들 질 줄 몰랐어? 알았잖아’ 이럴 텐데. 그건 안되지. 투쟁이고 나발이고 우선 먹고 살 힘을 기르자. 48명 모두가 흔쾌히 동의했어요. 서로 마지막 쌈짓돈을 모으고, 금도 팔아서 종잣돈을 마련했어요. 오뚝이처럼 일어나 보자. 모두가 놀라게.”
그렇게 지난해 8월 ‘노량진회센타’가 문을 열었다. 영업 5개월 차에 들어가고 있는 요즘 가게에 띵동띵동 주문 소리는 쉴새 없이 울린다. 보호대를 찬 손목과 반창고가 붙어 있는 손이 무색하게 다들 표정이 밝다. 오랜만에 일을 하는 것이 즐겁다고 입을 모은다. 구 노량진수산시장 상인이자 노량진회센타 직원이기 때문에 아직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많다. 인천종합어시장에서 직접 생선을 공수해 와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노량진’하면 뭐가 통하는지 경험을 살려 메뉴를 정했다.
‘어설프더라도 양해를 부탁드린다’는 안내문은 어느새 귀퉁이로 자리를 옮기고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대기 등록을 부탁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벽에 붙었다. 회센터는 ‘망하면 안 된다’라는 목표를 넘어 ‘한 번 온 손님들은 다시 찾는 가게’를 향해 가고 있다. 가게가 더 잘 돼서 지난 기간 동안 받은 관심과 도움에 보답하는 연대의 꿈도 있다. 하지만 제일 좋은 건 우리를 보고 ‘어 이게 되네?’라며 서울시와 대중들이 보이는 반응이다. 노량진수산시장에 공공 출자법인이 세워지고 시장으로 돌아가는 날을 상인들은 여전히 꿈꾼다.
두툼한 회가 소문이 난 탓일까. 지나가던 손님이 발걸음을 멈추고 가게에 들어와 이것저것 묻는다. “어쩌다 이런 큰 가게가 생겼어요?” “음식은 어떻게 주문하면 돼요? 종류는 어떤 게 있나요?” “많이 와도 앉을 자리가 있나요?” “이따 올 테니까 잘해주세요” 옛 상인이자 현직 직원이자 투쟁가는 질문들에 친절히 답한 후 덧붙인다. “옛날에 있던 노량진수산시장 아시죠? 여기 그때 상인들이 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