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과 싸우는 이미지 구축
공범들 진술·증거 파악해
향후 형사재판 대비 의도
“한달 전부터 미루던 치료”
윤, 밤 9시께 구치소 복귀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출석하면서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49일 만에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내란 수괴(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윤 대통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조사 요구에 불응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 조사실 대신 헌재 심판정을 택한 것은 공개된 자리에서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여론전’을 펼치려는 심산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계속 헌재 탄핵심판에 출석하겠다는 입장이어서 공수처 수사는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윤 대통령은 공수처 조사에서 내내 진술거부권(묵비권)을 행사했다. 하지만 이날 윤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라는 신념 하나를 확고히 갖고 살아온 사람” “국회의원 체포를 지시한 적 없다”는 등의 발언으로 자신을 적극 방어했다. 이는 반국가세력 척결과 부정선거 의혹 해결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순교자’ 이미지를 구축하고 지지·우호 여론을 조성함으로써 헌재를 압박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출석 시점은 내란죄 수사에 불응하며 시간을 끌고 여론전에 주력한 효과가 나타난 시점과 겹쳤다. 리얼미터가 전날 발표한 1월 3주차 여론조사 결과에서 ‘정권연장’ 응답(48.6%)은 ‘정권교체’ 응답(46.2%)을 앞섰다.
헌재는 지난 9일 “여론전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윤 대통령 지지 여론이 많아지면 파면 결정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 석동현 변호사는 지난 1일 대통령 관저 앞 지지자 집회 무대에 올라 “불법 수사, 불법 탄핵을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있으면 우리가 이긴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도 지난 15일 “계엄은 범죄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출석은 향후 열릴 형사재판 대비 전략으로도 풀이된다. 탄핵심판을 통해 공범들의 진술과 증거를 파악하면서 자신의 변론 전략도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법원에 구속의 적법성을 다시 판단해달라고 구속적부심을 청구할 경우 기소 시점은 다음달 4~5일로 미뤄진다. 그때까지 윤 대통령은 탄핵심판 4차(1월23일)와 5차(2월4일) 변론기일에 출석할 수 있다.
공수처의 윤 대통령 대면 조사 계획은 벽에 부딪혔다. 공수처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 삼아 윤 대통령을 강제구인해 조사실에 데려오려는 시도를 전날부터 계속하고 있다. 공수처가 전날 “다시 강제구인할 수 있다”고 압박하자 윤 대통령 측은 “앞으로 가능하면 헌재에 다 출석하겠다”고 맞섰다. 당초 공수처는 검사들이 서울구치소를 찾아가 조사하는 ‘현장 조사’(방문 조사)에 부정적인 분위기였지만 이날 윤 대통령이 헌재에서 돌아와 강제구인을 거부할 경우 현장 조사라도 하기 위해 구치소에서 대기했다.
하지만 이날도 윤 대통령 조사를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윤 대통령이 헌재에서 탄핵심판 변론을 마친 뒤 국군서울지구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은 뒤 오후 9시쯤 구치소로 복귀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측 윤갑근 변호사는 “한 달 전부터 주치의가 받으라고 한 치료인데 더 이상 연기하면 안 된다고 해서 오늘 치료를 받은 것”이라며 “치료내역은 알려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서울구치소 의무관 의견과 소장의 허락 아래 외부의료시설을 방문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