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책임질 각오 없으면 키우지 말아야죠”

2025.01.22 06:00 입력 2025.01.22 06:01 수정

유기·구조 동물 돌보는

강릉 ‘쌍둥이 동물원’ 남우성씨

남우성씨가 지난 2일 강릉시 옥계면에 위치한 자신의 동물원에서 ‘사랑앵무’들에게 모이를 주고 있다. 본인 제공

남우성씨가 지난 2일 강릉시 옥계면에 위치한 자신의 동물원에서 ‘사랑앵무’들에게 모이를 주고 있다. 본인 제공

동물사랑 각별했던 아버지가 권유
시설관리·청소 등 부모님이 함께
정성 쏟으면 마음 여는 게 느껴져

동물원 난립 제한 바람직하지만
졸속 추진 땐 동물들이 가장 피해

“이른바 ‘갈비뼈 사자’로 이슈가 됐던 ‘바람이’의 새끼, 실내 동물원에서 갇혀 지내던 백호, 있던 동물원이 폐원하면서 오갈 데 없어진 하이에나, 우리 동물원 앞에 버려진 햄스터, 토끼, 뱀, 사막여우….”

동물들을 어디서 구했냐는 질문에 강릉 ‘쌍둥이 동물원’을 운영하는 남우성씨(33)는 지난 2일 이렇게 답했다. 그는 유기 동물이나 ‘구조’한 동물들 위주로 동물원을 채운 이유에 대해 “아이들(동물들)이 모두 안락사당하게 둘 수는 없지 않으냐, 그렇다고 돌봐줄 데도 마땅치 않은 것 같아서…”라고 했다.

과거 가족 나들이의 단골 명소였던 동물원에 대한 시선은 이제 사뭇 달라졌다. 동물을 ‘전시물’ 취급하는 사육 환경, 학대에 가까운 비좁은 우리 등을 두고 비판적 인식이 커지면서다.

하지만 남씨의 동물원은 이런 비판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그의 동물원이 방치되고 버려진 동물들로 꾸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규모는 웬만한 공립 동물원 못지않다. 동물원 대지만 1만3000평. 사료 작물 재배용 밭까지 합하면 2만5000평에 달한다. 보유 동물도 60여종, 1200여마리에 이른다.

“동물원을 열기 전부터 (소문이 났는지) 입구에 동물들이 버려졌어요. 지자체에 유기 동물 구조 신고를 하는 건수가 한 해에만 60~70건 정도 돼요.”

직접 구조를 해 오는 경우도 있다. “일반 동물원에서 아픈 개체들은 전시에서 제외돼요. 전시 동물에 아무래도 보살핌이 집중되다 보니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죠. 실내 동물원에 갇혀 있는 개체들은 ‘로봇’ 같아요. 생기가 없어요. 이런 아이들을 ‘구조’해 옵니다. 가서 싸우는 게 아니라 정중히 설득해서 ‘분양비’를 드리고 데려와요.”

운영비는 ‘1인당 9000원’의 입장료 수입으로 댄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은 받지 않는다. 업종 특성상 환경부와 지방환경청, 지자체 등으로부터 1년에 8번 정도 감사를 받는다.

“사료를 직접 재배해서 먹여요. 냉동 닭 같은 육식동물 먹이도 직접 손질합니다. 안 그러면 적자가 나요. 업종 특성상 수익을 내기 쉽지 않아요. 큰 동물원들 대부분, 지자체나 정부기관에서 운영하는 이유죠.”

‘짭짤’하지도 않은 동물원을 시작한 건 ‘아버지의 권유’ 때문이었다. “직장 생활하시면서 번 돈을 전부 동물을 분양받고, 그 동물들이 지낼 축사를 짓고, 그 축사를 세울 부지를 매입하는 데 쓰셨어요. 정년퇴임을 2년 앞두고 제게 ‘동물원을 하고 싶은데 도와달라’고 하셨어요.”

그는 새벽 6시에 일어나 동물원으로 출근한다. 아프거나 출산을 앞둔 동물들을 살피고, 사료 작물을 재배하고 냉동 닭을 손질한다. 아버지는 축사 시설 관리를, 어머니는 축사 청소와 경리를, 직원 2명은 먹이 배급과 배설물 처리를 맡는다. 밤 9시 일이 끝나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된다. “주말엔 더 바빠요. 1박2일 이상의 여행을 가본 적이 없어요.”

관람객은 연평균 12만명에 달한다. 한 달에 1만명꼴로, 국립 동물원 못지않은 수준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동물들과 함께 자랐어요. 동물들은 마음을 쏟은 만큼 마음을 열어줘요. 유기 동물들의 경우 처음엔 저를 극도로 경계합니다. 그러나 정성껏 돌보다 보면 이 아이가 마음을 여는 게 느껴지는 순간이 와요. 털에서도 윤기가 나기 시작해요. 관람객들도 그걸 느끼는 것 같아요.”

그는 동물권 보장을 위해 동물원의 무분별한 난립을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선 “원론적으론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다만 방식은 “졸속인 것 같다”며 “동물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2023년 말 동물의 사육 방식과 환경을 보다 엄격하게 규제하는 방향으로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 개정됐다. 법은 기존 동물원과 수족관에 대해선 5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기한 내 스스로 환경이나 시설을 개선하라는 취지이다. “정작 업주들은 ‘내 돈 들여 개선할 바엔 접고 다른 장사 한다’는 사람이 많아요. 유예기간이 끝나면 동물원 60%는 문 닫을 거예요. 유기 동물이 대량으로 발생할 거예요. 국립생태원에 보호시설을 짓는다지만 그걸로는 턱도 없어요.”

그는 준비 없이 법만 바꾸는 게 능사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관계기관에서) 개선 계획을 내라고는 하는데 계획서 양식 하나 제대로 마련이 안 돼 있더라고요. 담당자는 물론 담당기관도 계속 바뀌어요. 얼마 전 한 지방 동물원이 문을 닫으면서 동물들이 물 한 모금 못 마신 채 방치된 사례가 있었어요. 그런 일이 또 생길 수도 있어요.”

‘동물권’은 법이 아닌 우리가 바뀌어야 보장될 수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동물원 입구에 버려지는 아이 중에는 햄스터나 강아지 같은 일반적인 반려동물뿐 아니라 뱀, 도마뱀, 사막여우 같은 애들도 있어요. 호기심에 덥석 데려왔다가 감당이 안 되니 그냥 버린 거죠. 반려동물이 아프면 치료비가 아까워서 버리는 경우도 많아요. 동물은 ‘쓰다 버리는 물건’이 아니에요. ‘죽을 때까지 책임질 각오’가 돼 있는 사람만이 ‘반려동물’을 키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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