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켜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방문 조사’ 시도에도 재차 진술을 거부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체포된 이후 내내 진술거부권(묵비권)을 행사해왔다. 검찰총장 출신인 윤 대통령은 ‘친정’인 검찰이 사건을 넘겨받은 뒤에도 계속 진술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공수처는 이날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방문했지만 윤 대통령을 공수처 조사실로 데려오는 ‘강제 구인’, 구치소 내부 조사실에서의 ‘현장 조사’(방문 조사) 모두 실패했다. 공수처는 “피의자 측이 일체의 조사를 거부해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앞서 윤 대통령 변호인단은 “공수처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전했다.
검찰은 조만간 공수처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을 계획이다. 법조계에선 윤 대통령이 검찰 조사실에서도 진술거부권을 행사할 거라고 예상한다. 진술거부권은 헌법이 보장한 권리지만 일반 피의자는 통상 사용하지 않는다. 구속 등 신병 처리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미 구속된 상태인 데다가 기소가 확실시되는 상황이라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은 자신의 변론 전략만 노출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형사재판 경험이 많은 A변호사는 “현재 윤 대통령은 공범들의 조서를 볼 수 없는 피의자 신분이지만 기소 이후 피고인이 되면 조서를 보면서 재판에 대응할 수 있다”며 “검찰과 공범들의 카드를 보기 전까지 자신의 카드를 보여줄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군·경찰 지휘부 10명을 구속 기소하는 과정에서 공수처보다 풍부한 수사기록을 확보해놓고 있다. 윤 대통령 입장에선 검찰에서의 진술이 관련자들의 진술이나 물적 증거와 달라 허점으로 지적당하면 더 불리해질 수 있어 진술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윤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질문을 받는 조사실보다 공방이 오가는 법정에서 자신을 적극 방어하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전날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3차 변론에선 직접 출석해 적극 반박에 나서기도 했다.
다만 이 같은 윤 대통령의 전략이 향후 재판에서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01년 대법원은 “(진술거부권 행사가) 객관적이고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진실의 발견을 적극적으로 숨기거나 법원을 오도하려는 시도에 기인한 경우 가중적 양형의 조건으로 참작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특수부 검사 출신인 B변호사는 “진술거부권은 구속 기소가 예상되는 피의자가 자신을 방어하는 효과적 방법”이라면서도 “일반적인 사건에선 판사가 진술 거부에 ‘반성이 없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면 유죄 형량이 더 무거워질 수 있어 위험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