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증편향적 신념에 대하여

2025.01.22 21:12 입력 2025.01.22 21:22 수정

독일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은 <사회체계이론>에서 근대사회가 여러 하위 체계들을 병렬적으로 진화시켜 온 과정을 설명한다. 그는 근대사회의 각 하위체계들인 법체계, 정치체계, 경제체계, 학문체계 등이 각각 자신만의 고유한 매체, 코드, 기능 등을 발전시켜 왔다고 본다. 예컨대 법체계와 정치체계는 두 가지 전혀 다른 세계이며, 각자 서로 다른 코드를 통해 스스로를 타 체계와 구분해왔다. 법체계가 ‘합법인가 불법인가’라는 코드로 자신을 특화해왔다면 정치체계는 ‘통치하는가 통치받는가’라는 코드로 스스로를 인지한다. 요컨대 합법성과 통치성의 개념은 서로 기원이 다를뿐더러 섞이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근대사회 원칙과 같은 것이다.

반면, 최근 12·3 불법계엄 이후 등장한 일련의 사태는 합법성과 통치성의 대립 혹은 법체계와 정치체계 사이의 갈등 구도를 보여준다. 헌재 심판에서 윤석열의 변호인단은 “계엄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며, “(이에 대해) 국회와 법원, 헌법재판소는 심판할 정보도 없고 능력도 없다”고 주장해 법체계와 정치체계의 고유 경계를 고의적으로 흐리게 한다. 어쩌면 이러한 논리적 혼합과 왜곡은 합법성과 통치성이란 서로 다른 두 세계 코드가 그의 뇌 안에서 ‘합선’되어버린 윤석열의 머릿속에서는 처음부터 익숙한 것일지 모른다. 많은 정치검사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죄인을 지목하고, 그 죄를 입증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곤 하지만, 이런 검사생활을 거쳐 대통령까지 된 그가 보여주는 합법성과 통치성의 개념적 혼란은 가히 환각적 경계성 장애를 능가한다.

이 와중에 자주 등장하는 부정선거 의혹 역시 이러한 법체계와 정치체계 사이의 경계 넘기와 무관하지 않아보인다. 야당이라는 정치 주체를 정치체계 안에서 상대할 수 없으니 이들을 반국가세력으로 몰아 불법이라는 법체계의 영역으로 밀어내려고 했고,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법적 증거’로서의 부정선거 의혹이었는 듯싶다.

그런데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주장이 쉽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 사회가 ‘확증편향’적인 사회심리의 포로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확증편향이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태도이다. 최근 이런 확증편향적 이념과 정보들은 정치권 및 정치화된 사이비 종교집단에 의해 확대되고 유튜브 미디어에 의해 그 편향성이 가속화되면서 일종의 정치적 재생산 사이클을 구축하게 되었다. 특정 지식과 정보가 확증편향 메커니즘을 통해 악무한적으로 확대되는 동안 이 괴물은 수많은 인간들을 숙주 삼아 자기증식을 성공리에 달성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이른바 극우 이념으로 세뇌된 정치 세력들이 탄생하였다.

앞서 말한 합법성을 침범하는 통치성에 대한 과대망상이 민주주의의 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확증편향성을 통해 사회를 편가르기 하는 것도 민주주의에 대항하는 중대 적이다. 불행히도 서부지법 난동사건은 그런 정치세력화의 산물이다. 법원은 이 사건을 중히 보며, 엄히 처벌할 것을 선언하였다. 물론 난동은 처벌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문제의 근원은 법적 처벌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은 참가자들이 아니라 그들을 이렇게 만든 확증편향성이라는 사회적 바이러스이다.

확증편향성은 마치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같으며 그 안에서 인간은 숙주다. 바이러스를 잡아야겠지만 바이러스에 걸린 환자들을 죽일 수는 없다. 오히려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경로를 차단하고 그 증식에 적합한 환경을 제거해야 한다. 극우 집회에 참여하고 동조하는 다중은 우리와 똑같이 한국 사회에 대해 좌절하고 분노를 느끼는 시민들이다. 사회적 이념의 대립은 치유 대상일 뿐 처벌 대상이 아니다. 그들이 느끼는 좌절과 분노를 우리 사회가 모른 체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욕망과 좌절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하며, 또한 무엇이 이들을 폭력적이면서도 세뇌적인 정치집회로 내모는지 탐색할 필요가 있다.

정치 이념은 대부분 상황학습이나 경험학습 혹은 사회학습 등 무형식적 학습의 메커니즘을 통해 전파되고 특정하게 배치된 집합적 연결망 안에 집단적으로 증식한다. 모든 생각과 이념은 어떤 방식으로든 학습을 통해 체화된다는 점에서 확증편향성을 치유하는 사회적 임무는 학습과 교육의 문제다. 만일 극우보수라는 사고방식의 재생산을 막고 싶다면 단순히 그들을 비난하거나 처벌하기 전에 그 지식생명체의 DNA 증식 고리를 끊고 이들을 재학습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이 경험하는 정치담론 학습 체계의 실태를 분석하고, 이들을 위한 비판적 정보문해력 학습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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