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을 체포·구속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23일 사실상 빈손으로 윤석열 대통령 내란죄 수사를 마무리했다.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직후 신속하게 수사에 착수한 검찰과 경찰에 비해 한발 늦게 뛰어들어 사건을 넘겨받았지만 윤 대통령이 구축한 무시와 불응의 벽을 넘지 못하고 기소권을 가진 검찰에 사건을 송부했다. 수사 과정에서 공수처는 수사권 및 관할법원을 둘러싼 논란에 휩싸이며 윤 대통령 측의 수사 방해 및 지연 전략에 빌미를 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공수처는 비상계엄 사태 직후 검찰과 경찰이 각각 수사에 뛰어들어 중복수사 논란이 있다면서 지난해 12월 8일 두 기관에 사건 이첩을 요구했다. 공수처법에 있는 사건 이첩 요청권을 행사한 것이다. 경찰과 검찰이 며칠 버티다 사건을 이첩하면서 공수처는 윤 대통령 내란죄 수사를 일임하게 됐다.
그런데 2021년 출범한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권이 있는지가 논란이 됐다. 윤 대통령 측은 공수처는 내란죄 수사권이 없으며, 이 때문에 공수처 수사는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19일, 26일 이뤄진 공수처의 세 차례 출석 통보에 모두 불응하면서 내세운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공수처는 수사 대상인 고위공직자의 ‘직권남용’ 혐의에 수사권이 있고, 윤 대통령의 내란죄 혐의는 직권남용 혐의와 관련이 있으므로 수사가 가능하다고 맞섰다.
공수처는 윤 대통령에 출석요구에 계속 불응하자 서울서부지법에 체포영장을 청구해 발부받았지만 윤 대통령 측은 이것도 문제를 삼았다. 공수처법상 공수처의 기소 사건 재판 관할인 서울중앙지법에 청구하지 않아 위법이라는 것이었다. 공수처는 서부지법이 윤 대통령이 머무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를 관할하는 법원이므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서부지법이 체포영장을 발부했지만 윤 대통령은 ‘불법영장’이라며 체포영장 집행 시도에 불응하고 버티다 지난 15일 체포됐다.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과 관할법원 논란은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16일 윤 대통령 측이 청구한 체포적부심을 기각하며 어느 정도 일단락됐다. 하지만 공수처가 윤 대통령을 구속하고도 조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마무리하면서 경찰과 검찰이 수사하던 사건을 무리하게 넘겨받았다는 비판 여론이 비등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으로서 누구보다 사법절차를 준수해야 할 윤 대통령이 수사기관의 조사 요구에 거부와 불응으로 일관한 것이 가장 큰 문제지만, 공수처도 피의자가 친 방어벽을 뚫지 못하면서 수사력의 밑천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공수처는 검찰에 윤 대통령 사건을 넘기면서 관련 기록 69권을 보냈지만 공수처가 자체 생산 자료는 절반에 못 미치는 26권이었다. 하지만 공수처가 윤 대통령을 상대로 확보한 조사 관련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공수처 조사에 유일하게 응했지만 검사의 질의에 답하지 않고 조서에 날인조차 하지 않았다. 이재승 공수처 차장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진술거부권이 피의자에게 보장된 권리이긴 하지만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진 않는다”며 “양형자료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측은 향후 형사재판 과정에서도 공수처가 수사권이 없으므로 위법이라는 주장을 계속할 전망이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은 이날 “공수처의 위법 수사와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끝까지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비상계엄 수사를 놓고 불거진 검·경·공 수사권 논란을 계기로 형사소송법 체계를 재정비할 필요성은 이미 드러났다. 논란을 촉발한 공수처 존재 의의에 대한 의문과 비판도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판사 출신 차성안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페이스북에 “(공수처가) 사건을 더 들지 않고 검찰에 신속히 넘긴 결단은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면서도 “공과는 나중에 세밀히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