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성장에 머문 지난해 4분기 한국 경제 성적표는 충격에 가깝다. 정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민간소비가 2020년 코로나 사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가라앉고, 건설투자가 부진했던 영향이다. 지난해 연간 성장률이 잠재성장률(2.0%)에 턱걸이로 부합하는 수준에 그치면서 올해와 내년의 저성장 우려도 한층 짙어졌다.
2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4분기 및 연간 국내총생산(GDP) 속보치’를 보면, 지난해 2.0%에 그친 연간 성장률은 1954년부터 GDP 통계를 발표한 이래 외환위기 때인 1998년(-4.9%), 코로나 때인 2020년(-0.7%), 6·25 전쟁 직후인 1956년(0.7%) 등에 이어 일곱번째로 낮은 수치다. 경제위기급 충격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부진한 성적표다. 특히 지난해 분기별 흐름을 보면, 2분기 역성장하고 3·4분기 0.1% 성장에 그쳐 사실상 성장이 멈춘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4분기 성장률과 지난해 연간 성장률을 깎아내린 건 내수다. 지난해 연간 민간소비는 1.1% 증가하는 데 그쳤다. 2020년(-4.6%) 코로나 위기 때 이후 증가 폭이 가장 낮다. 2022년(4.2%), 2023년(1.8%)에 이어 매해 악화하는 모양새다. 한은은 지난해 12월 정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신용카드 사용액 증가세가 많이 둔화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4분기 민간소비 증가율은 0.2%로 3분기(0.5%)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한은과 정부는 애초 3분기보다 4분기 민간소비가 살아날 것으로 봤으나 계엄 사태의 직격탄을 맞으며 연말 소비가 급감한 것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4분기 고물가·고금리가 완화되고 소득여건이 완만하게 개선되면서 민간소비가 개선되는 흐름을 예상했는데, 정국 불안에 따른 심리적 위축이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건설투자 부진도 성장률을 떨어뜨리는 데 영향을 미쳤다. 4분기 건설투자 증가율은 -3.2%로 3분기(-3.6%)보다 ‘찔끔’ 나아졌지만 연간 기준으로 -2.7%를 기록하며 감소세로 전환했다. 한은은 레고랜드 사태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여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건설수주 위축, 신규 분양실적 악화, 인건비 상승 등이 원인이라고 했다. 건설투자의 성장기여도는 지난해 2분기 -0.3%포인트에서 3분기 -0.4%포인트, 4분기 -0.5%포인트로 ‘역기여도’가 점점 확대됐다.
문제는 올해다. 올해 성장률은 1%대 중·후반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은의 기업경기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1분기 국내 기업들의 체감 경기는 85.9로 석달 연속 악화해 코로나 이후 최저 수준에 머물렀다. 신승철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올해 경기 하방 압력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며 “추가경정예산(추경) 등 경기부양 대책과 재정 신속 집행 등이 가시화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정치 불확실성과 사회 불안 요인이 빠르게 수습되지 않으면 성장률 하락에 더 영향을 줄 것”이라며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으로 대외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어 추경 편성 등 재정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