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심판 4차 변론…‘비상입법기구’ 등 성격 규명 초점
헌재 “국회 정지 의도로 보인다”…‘최상목 쪽지’ 증거로 채택
김 “내가 썼다, 아이디어 차원 제시”…윤석열 주장에 맞장구
포고령 놓고도 윤 “빨리 끝날 거라 대충 봤다” 의미 축소 급급
헌법재판소에서 23일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은 ‘비상입법기구 문건’과 ‘계엄포고령 1호’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헌법기관인 국회를 마비시키려는 목적이 있었는지와 연관되는 문제기 때문이다. 증인으로 출석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윤 대통령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주력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에 가담한 군·경찰 지휘부 진술과 정면 배치되는 증언을 쏟아냈지만, 공소장 내용과 어긋나거나 모순되는 지점이 다수 드러났다.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 당시 최상목 부총리에게 ‘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 편성’을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A4용지 1장에 “예비비를 조속한 시일 내 충분히 확보해 보고할 것, 국회 관련 각종 보조금, 지원금, 각종 임금 등 현재 운용 중인 자금 포함 완전 차단할 것, 국가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할 것” 등이 담겼다. 이 문건 내용은 국회 권능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로 간주돼 내란의 중요 증거로 꼽힌다.
두 사람은 문건 작성자가 김 전 장관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달 주체에 관해선 차이가 났다. 최 부총리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 긴급 현안질의에서 “(윤 대통령이) 참고하라고 접은 종이를 주셨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지시를 받은 대통령실 직원으로부터 문건을 받았다는 취지였다. 윤 대통령은 3차 변론에서 “준 적도 없다”며 내용 자체를 몰랐다고 부인했다.
김 전 장관은 이날 자신이 실무자를 통해 전달했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 말을 거짓으로 몰고, 윤 대통령과 입을 맞춘 것이다. 김 전 장관은 이 문건이 최 부총리뿐 아니라 한덕수 국무총리,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등에게도 전달됐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이 문건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제시한 것”이라며 의미를 축소했다.
재판관들은 의문을 쏟아냈다. 김형두 재판관은 ‘국회 관련 각종 보조금, 각종 임금 등 완전 차단’ 문구를 두고 “가장 주된 목표가 입법기구인 국회 기능을 정지시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미선 헌법재판관은 “5공화국의 국가입법회의와 같은 건가”라고 물었다. 김 전 장관은 “생각이 다르다”고 했다. 헌재는 비상입법기구 문건을 증거로 채택했다.
앞서 윤 대통령 측은 국회와 정당 활동을 금지하는 내용의 계엄포고령 1호에 대해 “김 전 장관이 종전 대통령에게 국회 해산권이 있을 당시의 예문을 잘못 베껴왔다”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이날 “대통령이 최종 검토했다”면서도 전두환 신군부가 발령한 “계엄포고령 10호에 근거했다” “(내가) 계엄을 주도한 주무장관”이라며 윤 대통령 주장의 취지에 맞게 자신에게 책임을 돌렸다. 윤 대통령 측 윤갑근 변호사는 “실무적인 작업은 국방부 장관이 계엄 주무장관으로서 다 한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계엄이 “거대야당의 독주를 막기 위한 상징적인 의미였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계엄에 투입된 군경 지휘부는 윤 대통령이 직접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을 막기 위해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 공소장에는 윤 대통령이 이진우 당시 수도방위사령관에게 전화해 “문을 부수고 끌어내라”며 “해제됐다 하더라도 내가 두 번, 세 번 계엄령 선포하면 된다”고 지시했다는 내용도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김 전 장관을 직접 신문하면서 포고령이 “법적으로 손댈 건 많았지만 어차피 이 계엄이 길어야 하루 이상 유지되기도 어려워” 고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계엄이 빨리 끝날 거라 포고령을 ‘대충’ 봤다는 취지다. 김 전 장관은 윤 대통령 질문에 “그렇게 말씀하시니 생각이 난다”고 맞장구를 치는 등 윤 대통령의 의중을 따르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날 김 전 장관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비상계엄 논의를 했던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비상계엄과 관련해 지시한 것은 몇번 안 된다”고 했다. 김 전 장관은 “(목적이) 부정선거 증거 수집이라기보다 실체를 제대로 파악해서 국민들에게 부정선거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김 전 장관의 답변을 교정하는 풍경도 연출했다. 계엄 당일 국회에 군 병력을 투입한 것을 두고 윤 대통령 측에서 “특전사가 국회의사당에 몇명 들어갔는지”를 묻자 김 전 장관은 “280명이 다 들어갔다고 보고를 받았다”고 답했다. 이를 듣던 윤 대통령은 질문을 하는 송진호 변호사 팔을 잡아당기며 지적했다. 송 변호사가 “280명은 국회 경내에 들어간 거고, 707부대가 본청에 들어간 건 12명 아니냐”고 하자 김 전 장관은 얼버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