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물 뒤집어쓴 흙과 죽어가는 벌레와 풀, 잘린 나무의 신음을 듣는 사람
저는 그를 아버지라 부르겠습니다
먹고 먹히는 계산법을 넘어 자연의 경이에 무릎을 꿇는 사람
자비와 분노가 한통속인 사람
서로 밥이 되어주기를 바라 마지않는 사람
저는 그를 형제이자 스승으로 받들겠습니다
절망조차 사치임을 아는 사람
탄식 속에서도 벌거벗은 인간의 영혼에 호소하는 것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믿는 사람
아흔아홉의 낙담 속에서도 한줄의 희망을 꿰는 사람
죽어가는 나무에게 물을 주는 사람
저는 그를 친구이자 동지라 믿겠습니다
폭력과 탐욕으로 얼룩진 인류 역사의 나쁜 책들을 태우고
절멸을 향해 가는 마지막 페이지를 고쳐 쓰는 당신이 촛불입니다
스스로를 태워 자기를 갱신하는 대지처럼
폭염과 산불과 가뭄, 광폭한 바람과 비,
물과 불조차 치우친 압도적인 비대칭 속에서 세계가 피 흘릴 때
대지에 씨앗을 심는 당신이 촛불입니다
촛불은 밤이 우리에게 내리는 명령,
콩처럼 타작되는 죽음 곁에 당신이 있습니다
가도 가도 수평인 바다처럼 뭍 생명이 숨 쉬는 광장은 우리 모두의 것,
움켜쥘 수도 떼어 갈 수도 없습니다
서로를 비추는 통 큰 불빛,
자기 몸 녹여 세상을 밝히는 촛농처럼
빛을 나눠 가진 우리가 촛불입니다
-시, ‘당신이 촛불입니다’, 김해자 시집 <니들의 시간>
겨우내 마주한 만행산은 눈사람, 머리에서 발끝까지 흰 눈을 뒤집어썼다. 키세스 같다. 산이 통째로 흰 봉분 같다. 밤마다 새 은박지 두른 듯 나무 하나하나가 하얗게 빛났다. 세계를 하얗게 고쳐쓰며 한자리에서 나무마다 눈 맞으며 견뎠겠다.
잡지 <전라도닷컴>에서 만든 기획특집 ‘앞으로 봄’을 보다 오랜만에 오래 웃었다. 지난해 12월3일부터 하루하루가 그날인 듯, 불안하고 때로 낙담하던 마음을 단번에 날려버린 구수한 말씀의 주인공들은 오일장 장터를 떠도는 사람들의 “나도 하고자운 말이 있소”다.
“자유, 자유를 외쌓더니 저만 혼자 자유할라고 즈그 거시기들만 다 갖다세와놨어. (…) 높은 자리에 앙겄다고 가치가 있가니.” 갯벌에 출정해 굴을 캐다가 함평장 한 귀퉁이에서 굴을 까서 한 보시기에 만원에 파는 임영애씨(84) 말씀이다. 아무리 많이 배워도 틀린 짓거리를 하고 경우가 없으면 가치가 없다는 일갈이다. “요 호미로 이 시상 못쓰게 맹그는 것들도 요러코 쏙쏙 뽑아내불믄 좋을 것인디…. 시작할 때는 널룹게 보여도 한 고랑 한 고랑 매다보문 끝이 있어. 겨울 지나문 봄 오대끼.” 무안 월두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김영임씨(67) 말씀이다.
“국민들 눈에 눈물 흐르는 것도 모르고.” “소도 그만치 갈치문 진작이 알아들어.” “나쁜 것을 쳐내고 존 것을 키워야제.” “동지 지났응께 하로하로 봄이 가차와.” 푸성귀 키우며 파래와 감태와 매생이 캐며, 새벽 너댓 시부터 하루 12시간씩, 닷새 중 하루 쉬며, 해남장과 완도장과 남창장과 강진장을 떠돈다는 고된 삶들이 입말을 입과 귀에 넣어준다. 지치지도 낙담하지도 마라.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봄이 안 온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대한이 지났어도 대한민국은 눈사람, 고장 난 칠흑의 세계를 고치는 중이다. 어제는 조만간 도래할 미래, 추위와 고통, 실패의 가능성마저 껴안고 미래로 돌진해왔다. 나라도 하나 더, 한자리 지키며.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새들이 날아간다. 울음과 노래를 떨어뜨리며. 못되고 힘센 말들이 일용할 양식보다 높은 세계와는 결별하겠다는 듯이. 새들이 눈 위에 미래를 떨어뜨린다. 소리의 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