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K방역 초기에만 성공, 오미크론 유행 때 ‘초과사망’ 봐야해”

2025.01.24 06:00 입력 2025.01.24 09:57 수정

지난 15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만난 임승관 중앙감염병병원 설립추진단 단장. 성동훈 기자

지난 15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만난 임승관 중앙감염병병원 설립추진단 단장. 성동훈 기자

임승관 국립중앙의료원 중앙감염병병원 설립추진단 단장은 코로나19 유행 현장 한복판에 있던 전문가다. 감염내과 전문의인 그는 이 시기에 감염병 전담병원인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에서 병원장으로 있었다. 경기도 코로나19긴급대책단장을 맡아 확진 후 입원하지 못한 대기자들이 집에서도 관리받을 수 있도록 하는 ‘홈케어 시스템’을 만드는 등 지자체 방역 모델을 만들었다.

그는 ‘3T’를 중심으로 한 ‘K방역’에 대한 상찬이 국내외에서 쏟아지던 시기에도 K방역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2020년 말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K방역의 성공 경험에 얽매이면 지금 유행을 못 막는다”고 경고했다. “의료자원을 제대로 배분할 방법을 찾지 않으면 긴 유행을 견뎌낼 수 없을 것”이라는 그의 말은 안타깝게도 코로나19 유행이 길어지면서 일부 현실이 됐다.

지난 15일 임 단장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만났다. 임 단장은 오미크론 유행 시기에 ‘K방역’이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를 제대로 평가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또 다시 팬데믹이 찾아왔을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임 단장과의 인터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 이제 코로나19는 인플루엔자(독감)처럼 계절마다 유행하는 풍토병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 그런데 올한해 백일해, 마이코플라즈마 폐렴,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등 각종 호흡기 감염병이 유행한 것을 보면 코로나19의 여파가 다른 양상으로 이어지는 것인가.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인플루엔자와 각종 감염병이 유행하지 않으면서 유행 주기가 달라졌고, 사람들 면역 수준도 낮아져서 올해 한꺼번에 유행이 찾아왔다는 이론들이 있는데 일견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코로나 이후에 호흡기 감염병을 받아들이는 감각이나, 의료 이용 행태가 변했기도 하다. 예전 같으면 감기가 심하면 하루 이틀 쉬고 병원을 안 가기도 했는데 요새는 환자들이 적극적으로 초기에 진단받고, 어떤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 확진을 요구한다. 경증일 때부터 입원 치료를 요구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코로나19 시기 국민적, 집단적인 경험을 하면서 의료 이용이 더 확대됐다.”

- 다시 팬데믹이 찾아올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해외 보건학계에서는 고병원성 조류독감에 의한 팬데믹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는 경고를 한다.

“엔데믹(풍토병)화된 코로나19 바이러스 변이가 발생해서 다시 위기가 올 것이라 생각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예측 불가능한 원인 미상의 병원체에 의한 팬데믹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중요한 것은 또 다시 팬데믹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코로나19의 경험을 토대로 대응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을 뭉뜽그려서 성공했다, 아니다라고 평가하는 대신 어떤 것을 보완해야 하는지 제대로 리뷰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선별검사를 하는 시민들의 모습. 한수빈 기자

코로나19 선별검사를 하는 시민들의 모습. 한수빈 기자

- K방역의 핵심인 ‘3T’에 대한 평가부터 해야할 것 같다. 중앙사고수습본부에서 제작한 백서에서는 코로나19 방역 정책 중에 3T는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K방역의 성공은 어떻게 가능했나.

(3T는 빠른 검사와 확진(Test)->역학·추적(Trace)->격리·치료(Treat)로 이어지는 방역 모델로, 임 원장은 3T 중에 마지막을 I(격리, Isolation)로 바꾼 ‘TTI’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TTI는 2015년 메르스의 유행 대응의 유산이다. 외국에서 확진자가 유입돼 병원을 중심으로 재감염이 이어지고, 이를 역학조사를 통해 번호를 붙이며 추적해본 경험이 이때 생겼다. 유행 후에 각종 제도를 정비한 것은 정말 칭찬할 만한 일이다. 감염병 유행 시 평상시 속도로 진단검사 키트 개발하면 안 되겠다는 것을 알게 돼 식약처에서 제도를 마련한 것도 코로나19 때 빠른 진단검사 키트 개발과 생산으로 이어졌다. 한국은 국가 주도의 정책을 집행하면 민간에서 대가없이 협력하는 사회적 문화가 있는데, 이런 것들이 결부돼 TTI를 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갖춰졌다.”

- 그렇다면 K방역은 대체로 성공했다고 볼 수 있지 않나.

“전체를 뭉뚱그려서 평가하면 안 된다. TTI에 기반한 K방역이 잘 작동할 수 있는 유행 단계가 있고, 그렇지 않은 단계가 있다. 작동할 수 없는 단계에도 대비했어야 K방역이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유행 초기부터 저는 유행이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상황을 상정하고 대응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두 번의 유행 피크가 지나고 난 뒤 더 이상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통하지 않는 광범위한 유행이 올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계획을 세우고 장기 유행을 대비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못했다.”

- ‘위드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대폭 완화한 2021년 11월 전까지 한국은 TTI에 기반한 방역정책을 펴왔다. 확진자가 늘면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높이고, 줄면 다시 낮추는 식의 ‘억제 전략’이었다. 장기유행에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방식인가.

“정부는 팬데믹이 억제 정책을 통해 끝날 것이라는 ‘종식 담론’을 취했다. 팬데믹에 대한 개념을 방역 당국과 한국 사회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경험했듯이 거리두기로 한 번 유행을 눌러놓으면 그 뒤에 더 큰 파도로 유행이 찾아온다. 초기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력하게 하는 것은 대처할 ‘시간벌기’를 하는 것이다. 다음 유행이 왔을 때 어떤 자원과 운영체계가 필요하고, 제도적 뒷받침은 어떻게 할지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어야 한다.”

코로나19 유행이 길어지면서 자영업자들을 중심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제해달라는 시위도 이어졌다. 사진은 2021년 7월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 소속 자영업자들이 거리두기 4단계 격상에 항의하는 1인 차량시위를 하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코로나19 유행이 길어지면서 자영업자들을 중심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제해달라는 시위도 이어졌다. 사진은 2021년 7월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 소속 자영업자들이 거리두기 4단계 격상에 항의하는 1인 차량시위를 하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 광범위한 확산이 찾아왔을 때를 대비한 시스템이 어떻게 정비됐어야 하나.

“선별검사소에서 확진이 되면 확진자 정보를 보건소에서 수집 전송하고, 정부와 지자체에서 병상 관리를 하면서 환자를 분류해 생활치료센터나 전담병원으로 보내는 식의 중앙 통제형 행정 관리 체계를 운용하는 것은 확진자가 적을 때에는 가능한 모델이다. 유행규모가 커지면 반드시 가정 또는 시설에서 대기하는 사람이 발생한다. 이때는 의료자원을 많이 쓸 수밖에 없는 ‘고비용, 저효율’의 TTI 방식으로 감당할 수 없을 뿐더러, 환자 치료 결과도 나빠진다.

‘안성시 지역사회 기반 코로나19 관리 모형’은 이 관점에서 접근했다. 환자가 평소 다니던 집 근처 의원들이 비대면 진료를 통해 환자 입원 여부를 판단했고, 입원이 필요하다 싶으면 보건소를 거치지 않고 바로 안성의료원으로 의뢰했다. 그러면 모든 환자를 입원시키지 않고도 집에서 병력 관리를 할 수가 있고, 입원이 필요하다 판단되면 바로 입원시킬 수 있다.”

- 광범위한 확산에 대비한 방역정책을 세우지 않은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나.

“오미크론 시기 초과사망을 봐야 한다. 한국과 의료체계가 비슷하고, 확진 사망자 수 데이터를 믿을 만한 일본과 비교해보자. 그 전까지는 한국 사망자 수가 평평하게 유지되고, 유행 시기에도 일본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2021년 말 델타 유행 시기에 한국 사망자가 눈에 띄게 많아지기 시작하고 2022년 초 오미크론 유행 시기에는 일본보다 훨씬 높게 치솟는다. 방역 정책이 임계점에 도달하고 더 이상 의료대응으로 버틸 수 없게 된 결과다. 자료가 더 엄밀하게 분석돼야 하겠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가설은 ‘미스매치에 의한 사망’이 다수 발생했다는 것이다.”

일본과 한국의 코로나19 사망자 그래프. 파란색이 일본, 빨간색이 한국으로 오미크론 유행 시기에 빨간색 선이 치솟는다. 월드인데이터 갈무리

일본과 한국의 코로나19 사망자 그래프. 파란색이 일본, 빨간색이 한국으로 오미크론 유행 시기에 빨간색 선이 치솟는다. 월드인데이터 갈무리

- ‘미스매치’가 어떻게 발생했나.

“오미크론 유행이 시작될 때까지도 한국은 보건소를 통해서 환자를 분류하고 입원여부를 지정했다. 철저한 환자 격리 치료를 위해서 감염병전담병원까지 수십 킬로미터씩 환자를 이송했다. 이 체계에서는 적절한 타이밍에 치료 개입이나 돌봄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오미크론 시기 사망 데이터를 분석해서 사망자가 발병 며칠째에 병원에 갔는지, 적절하게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으로 갔는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 감염이 일어난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나은 경우에도 감염병 전담 의료기관으로 이송된 후에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한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런 일들이 사망을 포함한 건강 피해가 커진 이유라고 추정한다.”

- 오미크론 시기 사망자의 95% 이상이 60대 이상 노인이었다. 이 시기 유행으로 우리 사회 약자로 여겨지는 노인들이 주로 사망한 점도 들여다봐야 할 지점이다.

“엄청난 사망자 수가 발생했음에도 우리 사회가 이 시기를 잘 돌아보지 않는다고 느낀다. 대부분 사망자가 노인이기 때문인 것 같다. 노인을 차별하거나 폄훼하려는 의미가 아니라, 원래도 우리 사회에서는 노인들이 ‘보이지 않는 존재’였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많은 수의 노인들은 지역 사회 내에 있지 않고 시설에 있다가 감염되고 돌아가셨다. 저는 코로나19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거칠게 한 줄로 표현하자면 ‘시설화된 돌봄 체계 안에서 노인들이 영문도 모르고 죽어나간 사건’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임승관 단장은 코로나19 환자가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유행 양상에서는 환자 분류를 중앙에 집중하고, 원거리로 이송하는 체계가 잘 작동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진은 코로나19 확진 환자를 병실로 옮기고 의료진의 모습. 권도현 기자

임승관 단장은 코로나19 환자가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유행 양상에서는 환자 분류를 중앙에 집중하고, 원거리로 이송하는 체계가 잘 작동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진은 코로나19 확진 환자를 병실로 옮기고 의료진의 모습. 권도현 기자

- 보건복지부가 정리 중인 코로나19 백서에는 다음 감염병 대비를 위해서 가장 신경써야 할 부분 ‘공공의료 강화’를 내세웠다. 왜 공공의료인가.

“공공병원은 위기가 닥치면 ‘예산 수립 전에 일단 무언가 할 수 있는 곳’이다. 코로나19 때도 손해 여부를 따지지 않고 빠르게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전환하고 병상을 비웠다. 민간 병원은 동원도 어렵지만, 그런 속도를 요구하기 어렵다. 모든 재난이 그렇듯 감염병 위기대응은 속도전이다. ‘우리 시민의 건강과 생명은 내가 중심이 돼 지켜야 돼’ 라고 생각하는 지역 병원이 존재해야만 지자체 단위의 방역 정책이 가능하다.”

-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쓰였던 공공병원들이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며 경영위기에 처하고 기능이 축소됐다. 이 문제는 어떻게 접근해서 해결해야 할까.

“공공병원을 찾던 환자들의 발길이 끊기고, 재정적으로 어려워진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저는 현재의 공공병원 위기가 코로나 때문에 왔다고 만은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방에 있는 공공병원들은 코로나 이전부터 의사를 구하기 어려웠다. 지역 주민들이 원하는 의료서비스의 눈높이가 점점 올라가는데 그에 맞춰서 기능이 강화되지 못했다. 코로나19로 악화된 경영 손실분에 대해 보상만 하고 인건비 등 운영비 지원 폭을 조금 올린다고 해서 공공병원이 강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의사 수를 늘리거나 의사 인건비를 높이는 것만이 것만이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저는 좀 더 중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역 공공병원의 인적 자원 확보에 굉장한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과 별개로 공공병원들의 기능을 지역 이용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수준으로 ‘레벨 업’하는데 1차적으로 우리의 역량과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심뇌혈관, 응급, 외상, 소아 등 주요 필수의료 영역에서만이라도 2차 종합병원으로 기능할 수 있게 공공병원을 지역의 안전망으로 인식하고 재구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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