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금권주의자…고관세, 2년 안에 끝날 수도”

2025.01.25 09:00 입력 2025.01.25 09:04 수정

‘미국 정치학 전문가’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인터뷰

하상응 서강대 정외과 교수가 지난 1월 20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 여적향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관련 인터뷰를 하고 있다./강윤중 기자

하상응 서강대 정외과 교수가 지난 1월 20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 여적향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관련 인터뷰를 하고 있다./강윤중 기자

[주간경향]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Robert D. Putnam)의 양면게임(Two-Level Game) 이론에 따르면 외교정책은 정치적 제약, 이해관계자, 여론 등 ‘국내적 수준(Domestic Level)’이 허용한 범위(Win-Set) 내에서 추진된다. 이는 미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를 향해 무절제한 발언을 쏟아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역시 국내적 수준이 용인한 범위 안에서 움직인다. 여론의 지지, 국회 동의 없는 외교정책은 파급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미국 외교정책에 관한 관심은 오직 트럼프, 즉 미국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개인적 성향에만 쏠린다. 관세 폭탄, 이민자 추방과 같은 자극적인 발언은 마치 그를 견제할 장치가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한국에서 쏟아진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우려 역시 그의 개인적 성향에 초점을 맞출 뿐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고려는 빠졌다.

지난 1월 20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만났다. 하 교수는 미국 국내 정치 전문가다.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과 함께 제기된 위협은 대개 그가 국내법, 국제관계, 동맹 등을 모두 무시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자’임을 전제로 한다. 과장된 위협은 현실을 가린다.

-미국이 트럼프를 다시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지난해 치러진 미국 대통령선거를 결정한 요인은 ‘물가’였다. 정확히는 ‘물가가 너무 올랐다’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부터 조짐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관세 인상에 따른 소비자 물가 상승이다. 그런데 임기 말에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구제금융까지 풀리게 된다. 이미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린 상태에서 정권을 이어받은 바이든 행정부 역시 경제침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돈을 푸는 확장 재정정책을 썼다. 그 결과 바이든 행정부 첫 2년 동안 물가상승률이 1970년대 말(약 15%) 이후 최대 상승치(9.1%)를 기록했다. 2024년 대통령선거를 보면 1980년 대통령선거 이후 44년 만에 후보 입에서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물가가 승패를 결정하는 결정적 요인이 된 것이다.”

-트럼프는 여전히 관세 인상을 주장하지 않나.

“트럼프가 말한 관세정책이 실제로 시행될 것이냐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있다. 트럼프가 선거 기간, 당선 이후 쏟아낸 말은 총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는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 일, 둘째는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하기 어려운 일, 셋째는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트럼프가 말한 관세도 이 기준으로 나눠볼 필요가 있다. 중국, 멕시코, 캐나다 등 특정 나라를 지목해서 관세를 올리는 것은 현 상황에서 대통령이 혼자 결정할 수 있다. 연방헌법에 따르면 관세 부과는 연방의회의 권한이지만 연방의회에서 법을 만들어 권한을 대통령에게 일임해왔기 때문이다. 모든 나라에 일괄적으로 10~20% 정도 보편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가를 두고는 이견이 있다. 실제로 1971년 닉슨 대통령이 브레턴우즈 체제를 폐기(달러의 금 태환 정지)하며 일시적으로 10% 보편관세를 매긴 적이 있다. 무역 상대국들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한시적 비상수단으로 사용했다. 트럼프는 이를 근거로 보편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인데 법적 근거가 무엇인지 논란이다(닉슨은 무역확장법과 긴급가격통제법을 근거로 관세를 부과했다. 무역확장법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긴급가격통제법은 1974년 효력을 잃었다). 개별국가에 관세를 부과하든, 보편관세를 매기든 관세는 물가 상승 요인이 된다. 이를 4년 내내 유지할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지난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D.C.의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취임식을 거행하며 선서를 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D.C.의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취임식을 거행하며 선서를 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는 재선 대통령이다. 4년만 남았는데 못 할 이유가 있나.

“4년이 아니다. 2년 안에 끝날 수 있다. 2026년 중간 선거가 있다. 상·하원 중 하나 혹은 두 개를 넘겨주면 정책 추진의 동력을 잃는다. 이를 알기 때문에 그 즈음해서 관세를 다시 낮출 수 있다. 관세를 계속 부과하는 것은 경제적 부작용이 너무 크다는 것을 주위 사람들에게서 들어서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미국 대통령의 권한에 대해서는 조금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고, 연방의회 상·하원 다수당이 공화당이며, 연방 대법원 대법관 9명 중 6명이 보수성향이라는 것까지는 맞다. 그런데 이를 조목조목 뜯어보면, 첫째로 1989년 이후 새로운 대통령, 행정부가 임기를 시작할 때 여당이 연방 상·하원 다수당이 아닌 적이 한 번도 없었다. 30년 넘게 이어져 온 전통인 만큼 트럼프가 대단히 특이한 상황을 맞았다고 할 수 없다. 둘째로 연방의회 다수당이 공화당이지만 이들이 모두 트럼프의 지시를 따른다고 보기도 어렵다. 지난 1월 3일, 미국 공화당 상원 원내총무로 선출된 것은 존 슌(John Thune) 의원이다. 사우스다코타주 출신의 4선 상원의원인데 당시 후보로 언급됐던 사람 중 트럼프와는 가장 거리가 먼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트럼프가 공화당에서 차지하는 입김이 큰 것은 맞지만, 의원들이 트럼프의 말대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하원의 경우, 공화당과 민주당의 의석 차가 5석이다. 공화당이 다수당인 것은 맞지만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해서 또 하나 살펴봐야 하는 것은 미국은 연방제 국가라는 사실이다. 대통령에게 맞서는 주들이 존재한다.”

-맞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한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이 트럼프가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정책을 어느 정도로 물릴 수 있느냐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지설이 대표적인데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주정부 입장이 연방정부와 다를 수 있다. 미국 연방법에는 대기오염을 규제하는 청정공기법(CAA·Clean Air Act)이 있는데 재밌는 구절이 포함돼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연방정부가 정한 환경 규제보다 더 강한 규제를 해도 된다는 예외조항이다. 심지어 다른 주정부가 캘리포니아주 규정을 따라도 된다고도 나온다. 이로 인해 캘리포니아주는 친환경정책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2035년까지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금지하고, 2045년까지 캘리포니아주 내의 에너지 공급은 전부 친환경·신재생 에너지로 한다는 것 등이다. 화석연료 사용을 지지하는 트럼프는 캘리포니아주가 눈엣가시처럼 여겨지겠지만 자신의 정책을 강제할 수 없다. 실제로 1기 때 예외조항을 철회하려고 시도하자 캘리포니아주가 트럼프를 상대로 약 70건의 소송을 걸었다. 여기서 80% 정도를 캘리포니아주가 이긴다. 트럼프는 이번에도 수많은 행정명령을 쏟아내겠지만, 서명하자마자 소송이 걸릴 수 있다. 게다가 IRA는 연방의회를 통과해 만들어진 법이기 때문에 이를 무효화하기 위해서는 다시 법을 만들어야 한다. IRA 지원을 받아 기업들이 공장을 짓고 있는 지역 상당수가 공화당 의원 지역구라는 점을 고려하면 IRA 폐기는 쉽지 않다. 행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시행세칙을 조정해 전기차를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지원하던 보조금을 삭감하는 정도다.”

하상응 서강대 정외과 교수가 지난 1월 20일 경향신문 여적향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관련 인터뷰를 하고 있다./강윤중 기자

하상응 서강대 정외과 교수가 지난 1월 20일 경향신문 여적향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관련 인터뷰를 하고 있다./강윤중 기자

-외교정책 측면은 어떤가.

“신냉전, 다극체제 등의 예전 국제질서를 설명하는 방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시대가 될 것이다. 과거 국제질서를 설명했던 개념들을 지금 대입해서 쓰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을 수 있다. 이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 던져야 할 첫 번째 질문은 트럼프 외교정책의 우선순위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름 공통된 시각이 있다. 우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문제가 있고, 그다음으로 중동 문제가 있다. 세 번째로 중국 문제가 있다. 한반도 문제는 네 번째 정도에 위치하는 줄 알았는데 그린란드, 파나마 운하 등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더 밀리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온다. 두 번째 질문은 트럼프가 정말 중국을 군사·안보적 위협으로 생각하느냐다. 트럼프가 통상정책에서 중국에 60% 관세를 부과한다고 하니 동일 선상에서 트럼프가 중국을 군사·안보의 최대 위협으로 본다고 연결하는 사람이 많다. 이에 대해선 ‘틱톡 규제’가 반례가 될 수 있다. 틱톡이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주장은 트럼프 본인이 1기 행정부 때 제기한 것이다. 이를 받아 바이든 행정부 때 연방의회가 틱톡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정작 트럼프는 틱톡 금지법을 반대했다. 겉으로는 중국을 때리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은 사례는 또 있다. 애플, 테슬라처럼 큰 기업들이 모두 중국에서 여전히 영업하고 있다. 트럼프가 정말 중국을 군사·안보적 위협이라고 생각한다면 기업들이 중국으로 나가게 두겠나. 그는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기보다 금권주의자, 즉 플루토크라트(Plutocrat)에 가깝다.”

-금권주의자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

“쉽게 말해, 제일 중요한 것이 돈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이 곧 미국의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이러한 경향은 인사에서도 드러난다. 재무부(Treasury Department)나 상무부(Commerce Department)처럼 돈과 관련된 자리에는 모두가 예상했던 전문가들로 채웠다. 경제정책을 총괄할 재무장관 후보자로 헤지펀드 ‘키스퀘어 그룹’ 창업자 스콧 베센트를 지명했고, 상무장관에는 투자은행 ‘캔터 피츠제럴드’의 하워드 러트닉을 지명했다. 모두 월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국방, 국무장관을 오직 자신에게 충성하는 인물들로 발탁한 것과 대조적이다.”

-트럼프가 마가를 만든 것 아닌가.

“트럼프가 마가를 내세워 집권했지만, 마가 정신이 투철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를 보좌하는 세력들 간의 다툼에서도 확인된다. 교육 수준이 높은 유학생이나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주어지는 H-1B 비자 발급을 두고 충돌이 있었다. 마가 세력은 축소를 주장했지만, 머스크 등이 이에 반대했다. 마가 정신으로 보면, 미국 내 일자리를 빼앗는 이민자들을 쫓아내야 하지만 트럼프는 머스크의 손을 들어줬다. 그가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책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금권주의자에 가깝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금권주의자라는 것이 한반도 정세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나.

“관세 문제, 방위비 분담금 문제, 미국에 투자한 회사들의 보조금 문제뿐만 아니라 안보에서도 이러한 성향이 나타날 수 있다. 북·미 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대신, ICBM(대륙간탄도미사일)만 만들지 말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에 핵이 있든 없든 미국 본토를 공격할 무기만 없다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다만 트럼프에게는 ‘다음’이 없기 때문에 그가 북핵 문제 해결 등의 레거시(유산)를 남기고 싶어할 수는 있다. 우선순위로 보면 유럽, 중동, 중국보다는 밀리지만 가시적 효과 순서로 따지면 김정은과의 만남만 한 이벤트가 없다. 한국 입장에서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만한 것은 미국은 대통령이 취임하고 첫 100일, 석 달이 중요하다. 이 기간에 상대국 정상을 한 명씩 불러서 압박하는데 우리는 지금 트럼프와 백악관에서 만날 사람이 없는 상황이다. 그가 다른 나라를 어떻게 대하는지 지켜볼 시간은 벌었다.”

-현 정부에 조언해 달라.

“지금 상황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미국에 투자한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이다. 관세, 친환경정책 등에 대한 우리 기업의 목소리를 반영해서 미국과 협상에 나서야 한다. 특히 트럼프에게 수세적이기보단 요구할 것들을 선제적으로 제시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트럼프의 방식은 주고받는 거래주의다. 미국이 요구하는 것을 가만히 듣기만 해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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