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수사 내내 충돌한 검·경·공…부실한 개혁이 빚은 대혼란

2025.01.26 15:25 입력 2025.01.26 15:41 수정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출석해 앉아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출석해 앉아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2·3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검찰,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제각각 뛰어들어 경쟁을 벌이면서 충돌의 연속이었다. 급기야 법원이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기간 연장을 이례적으로 불허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립이 부실하게 이뤄진데다 각 수사기관이 현직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 수사에서 공을 세우려고 다투면서 빚어진 혼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검찰은 26일 심우정 검찰총장 주재로 대검 차·부장과 전국 고·지검장이 참여하는 회의를 열어 윤 대통령에 대한 사건 처리를 논의했다. 검찰은 지난 23일 공수처로부터 윤 대통령 사건을 넘겨받아 서울중앙지법에 구속영장 연장을 신청했지만 두 차례나 불허됐다. 윤 대통령을 구속 상태로 보완 수사한 뒤 다음달 초 기소할 계획이던 검찰은 혼란에 빠졌다.

법원은 “공수처 검사가 수사한 다음 공소제기요구서를 붙여 서류와 증거물을 검찰청 검사에게 송부한 사건에서 공소제기 여부를 판단하는 검찰청 검사가 수사를 계속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공수처가 윤 대통령을 수사한 결과를 토대로 검찰은 보완 수사 없이 기소 여부만 판단하라는 취지로 풀이된다. 법원은 “검찰청 소속 검사의 보완 수사권 유무나 범위에 관해 공수처법에 명시적인 규정이 없는 점” 등을 근거로 열거했다.

공수처는 경찰의 지원을 받아 지난 15일 윤 대통령을 체포했지만 한 마디 진술도 받아내지 못한 채 내란죄 기소권을 가진 검찰에 사건을 넘겼다. 윤 대통령은 공수처에 진술거부권(묵비권)을 행사하고 조사실 출석을 거부하면서 일주일 넘게 버텼다. 결국 지난 23일 공수처는 검찰에 윤 대통령 사건을 ‘공소제기요구’ 형식으로 넘겼다. 다른 수사기관에 수사해 달라고 보내는 ‘이첩’과 달리, 기소해 달라고 공소제기요구서를 붙여 보내는 ‘공소제기요구’ 결정이 결과적으로 검찰의 보완 수사를 막아 버렸다.

검찰과 공수처는 윤 대통령 구속기간과 사건 송부 시점에 대해서도 골머리를 앓았다. 공수처가 구속한 피의자를 검찰에 넘길 경우 구속기간 규정이 공수처법과 형사소송법에 없었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상 1차 구속기간은 열흘이고, 법원 허가로 2차 구속기간 열흘 연장이 가능하다. 다만 윤 대통령처럼 체포적부심과 구속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받으면 그만큼 시간이 빠진다. 1차 구속기간 만료를 검찰은 27일로, 공수처는 28일로 봤다. 반면 윤 대통령 변호인단은 이날 “구속기간 만료는 25일 자정”이라며 “불법 감금을 중지하고 즉시 석방하라”고 주장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하는 검찰이 윤석열 대통령 사건 처리에 대해 26일 심우정 검찰총장 주재로 전국 고·지검장 회의를 열었다. 성동훈 기자

12·3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하는 검찰이 윤석열 대통령 사건 처리에 대해 26일 심우정 검찰총장 주재로 전국 고·지검장 회의를 열었다. 성동훈 기자

윤 대통령 수사는 검찰, 경찰, 공수처 세 기관이 주도권 싸움을 벌이면서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사흘 뒤 검찰과 경찰은 각자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수사를 개시했다. 공수처는 ‘공수처장이 이첩을 요청하는 경우 해당 수사기관은 응해야 한다’는 공수처법 24조를 근거로 검찰·경찰로부터 사건을 가져왔다.

윤 대통령 측은 “내란죄 수사권이 없는 공수처가 불법 수사했다”고 주장해 향후 열릴 형사재판에서도 주요 쟁점으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내란죄를 수사할 권한을 명백하게 가진 기관은 경찰이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수사 대상 범죄인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관련 범죄’로 내란죄를 수사하는 방식으로 우회했다. 재판에서 공수처의 ‘불법 수사’가 인정되면 윤 대통령이 크게 유리해진다.

공수처는 윤 대통령 사건을 단독 수사할 인력 자체가 부족해 윤 대통령 체포에 1차례 실패하기도 했다. 공수처법상 공수처 정원은 처장·차장을 포함해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으로 검찰 1개 지청 수준에 불과하다. 공수처는 2차 체포 시도를 앞두고 경찰에 ‘체포영장 집행을 일임한다’는 공문을 보냈지만 경찰이 거부했다. 경찰은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사법경찰관에 대한 검사의 지휘권이 폐지됐다는 이유를 들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정부·여당이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립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허점이 있다는 지적은 여러 차례 제기됐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여야는 형사사법제도의 혼란을 사실상 외면하고 방치했다. 고검장을 지낸 한 변호사는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립은 세밀하게 설계해 추진했어야 한다”며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채 졸속으로 이뤄진 결과 불필요한 혼란과 국론 분열을 야기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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