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최대 양동시장 설 앞두고 모처럼 북적
“130마리 팔던 닭, 올 설엔 70마리만 준비”
명성 높은 홍어가게도 “매출 30% 이상 줄어”
시민들 물건 ‘들었다 놨다’…“정말 어렵다”
‘닭을 손질해 달라’는 주문에 호박꽃 식육점 김윤남 할머니(79)가 닭 한 마리를 도마 위에 올렸다. 40년 동안 광주 서구 양동시장에서 닭을 팔아온 할머니의 칼질은 거침이 없었지만 최근에는 칼을 잡는 횟수가 크게 줄었다.
호박꽃 식육점에서는 설이나 추석 등 명절 때에는 제사상에 올라가는 ‘머리 달린 닭’을 주로 판다. 진열장에는 미리 손질해 둔 닭들이 놓여 있었지만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김 할머니는 “작년 설에는130마리 정도를 팔았는데 올해는 70마리만 준비해 뒀다”면서 “닭 가격이 마리당 1500원이나 올라 남는 게 없고 가격이 비싸니 달라는 사람도 많지 않다”고 했다.
설을 사흘 앞둔 26일 광주 서구 양동시장에는 모처럼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농산물과 수산물, 축산물, 의류 등을 파는 가게 630여 개가 모여있는 양동시장은 호남 최대규모 전통시장이다.
무료 개방된 주차장과 주변 도로에는 장을 보러온 차들로 북적였다. 풍년제사마트 김경아씨(54)는 “전통시장에서 온누리상품권으로 구매할 경우 최대 30%를 환급해 주는 행사가 진행되고 날씨도 비교적 따듯해 사람들이 늘었다”고 했다.
하지만 상인들과 시민들은 한결같이 “경기가 좋지 않다”고 했다. 양동시장도 차례음식 재료인 농축산물과 수산물 등을 파는곳에는 비교적 사람들이 많았지만 조금만 벗어나도 골목은 썰렁했다.
홍어와 홍어무침이 전국적으로 유명한 양동시장의 홍어가게들도 올해 주문이 크게 줄었다고 했다. 남편과 광산홍어상회를 운영하는 박막례씨(61)는 “전국에서 택배를 통한 주문이 많은데 올해는 작년 설보다 30%는 매출이 줄었다”고 했다.
조금이라도 싼값에 차례상을 준비하기 위해 시장을 찾은 시민들도 고물가에 주저했다. 광주 북구 임동에서 왔다는 김강후씨(65)는 크기에 따라 10마리에 3만원, 3만5000원이라는 굴비를 몇 번이고 ‘들었다 놨다’ 했다.
굴비는 원래 20마리를 묶어 한 두름으로 팔지만 비싸지면서 절반인 10마리 단위로 파는 상품이 많아졌다. 또 다른 시민은 10㎏인 꼬막 한 망의 가격을 묻고는 “5㎏만 달라”고 했다.
아들 부부와 장을 보러 나온 박모씨는 “설을 앞두고 친지들과 나눌 음식 재료를 사러 나왔지만 경기가 정말 어렵다”고 했다.
광주의 한 산업단지에서 제조업체를 운영한다는 박씨는 “원자재인 알루미늄 값이 1㎏에 2000원 넘게 올랐는데 제품 가격은 인상하지도 못하고 있다”면서 “직원이 8명인데 설 상여금도 주지 못했다.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다.
시장 한편에선 윤 대통령을 향한 원성도 흘러나왔다. 한 상인은 “윤석열 대통령의 12·3비상계엄 선포 이후부터 주문 감소가 시작되더니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이후에는 아예 장사가 안된다”면서 “서민들은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야 하느냐”며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