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남 전통시장 가보니
닭 손질 주문 물량은 반토막
“비상계엄 때부터 주문 줄어”
고객들, 가격 묻고 구매 주저
“물가 너무 올라 장 보기 고민”
양동시장선 정권 원성 빗발
서문시장서도 보수세 ‘흔들’
지난해 말 국민들은 여느 때보다 ‘추운’ 겨울을 맞았다. 12·3 비상계엄 사태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제주항공 참사로 소중한 이웃들을 잃는 슬픔을 겪었다. 민생경제는 직격탄을 맞았다. 폭등한 물가와 불확실한 미래 탓에 국민들은 지갑을 닫고 움츠렸다. 설 명절을 앞두고 찾아간 영호남 대표 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매출이 작년의 절반도 안 된다”며 입을 모아 한탄했다.
“명태 한 마리만 포 떠 주이소.”
26일 오후 찾아간 대구 중구 서문시장의 한 수산물 가판 앞에서 딸과 함께 온 70대가 상인에게 말을 건넸다. 상인 김희분씨(82)는 아이스박스에서 큼지막한 동태를 꺼냈다.
“만원예”라는 김씨의 말에 손님은 “작년보다 올랐네”하며 호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하게 접은 지폐를 꺼내 건넸다. 가판에는 제수용으로 쓰는 조기를 비롯해 가자미, 오징어 등 생선이 널렸다. 한동안 지켜봐도 찾는 이는 드물었다.
서문시장에서 50여년 동안 생선을 팔았다는 김씨는 “설 연휴에 이 정도로 손님이 적은 건 처음”이라”며 “이래서는 몇년 버티지 못하고 장사를 접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설 차례상의 필수 품목인 건어물 상가에도 찬바람이 가득했다. 2대에 걸쳐 100년 가까이 건어물을 팔고 있다는 정정화씨(67)는 “적게 남긴다는 생각에 가격을 조금만 올렸지만 찾는 손님 자체가 너무 없다”고 하소연했다.
어머니와 함께 장을 보러 온 서모씨(42)의 장바구니는 거의 비어 있었다. 서씨는 “대형마트보다는 물건 값이 싼 것 같은데, 체감할 정도로 저렴하지는 않아 쉽게 지갑을 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 차원의 이렇다할 대책이 없어 아쉽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구시는 올해 지역화폐인 ‘대구로페이’ 예산을 배정하지 않았다. 서문시장은 ‘보수 텃밭’인 TK지역에서 정치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민심의 바로미터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경기 침체가 윤석열 대통령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목소리도 나왔다.같은 날 호남의 최대 규모 전통시장인 광주 서구 양동시장의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호박꽃 식육점 김윤남씨(79)가 “닭을 손질해달라”는 손님 주문에 닭 한 마리를 도마에 올렸다. 그는 “작년 설에는 130마리 정도를 팔았는데 올해는 70마리만 준비했다”면서 “닭 가격이 마리당 1500원이나 올라 남는 게 없고, 가격이 비싸니 달라는 사람도 많지 않다”고 했다.
시장은 설을 앞두고 장을 보러온 손님들로 모처럼 북적였다. 하지만 시장 상인도, 손님들도 한결같이 “경기가 좋지 않다”고 했다.
시장 골목은 농축산물과 수산물 등을 파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썰렁했다. 양동시장에서 남편과 광산홍어상회를 운영하는 박막례씨(61)는 “전국에서 택배를 통한 주문이 많은데 올해는 작년 설보다 30%는 매출이 줄었다”고 말했다.
시장을 찾은 시민들은 고물가에 구매를 주저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광주 북구 임동에서 왔다는 김강후씨(65)는 크기에 따라 10마리에 3만~3만5000원에 파는 굴비를 몇번이고 들었다놨다 했다. 생선가게에 들른 또 다른 시민은 10㎏인 꼬막 한 망의 가격을 묻고는 “5㎏만 달라”고 했다.
시장 한편에선 윤 대통령을 향한 원성도 흘러나왔다.
한 상인은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부터 주문 감소가 시작됐다”면서 “서민들은 대체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야 하느냐”고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