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의 자기 방어를 위한
갖가지 허언·궤변·억지 주장들
법률가 언어로 보고 싶지 않아
잘못된 법적 메시지는 배임행위
권력관계에서 피지배자의 무기는 언어다. 강자는 주먹으로 치고 약자는 말로 맞선다. 그런데 그 말마저도 ‘입틀막’을 당하던 세상에서, 권력의 우두머리가 한번 된통 넘어지자 요즘의 ‘내전’에서는 희한하게도 권력이 언어를 무기로 삼고 있다. 헌재의 법정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인권을 보장하라는 주장이 나오다니, 기이하지 않은가. 쓴웃음이 절로 난다.
법률가들은 이미 법학을 배울 때부터 갑설과 을설, 긍정설과 부정설, 적극설과 소극설의 대립을 보며 논쟁의 능력을 키운다. 법적 판단에 이르는 논리 구성과 아울러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적 고려사항의 우위, 다른 말로는 이해관계의 교직(交織)과 대립 구조에서 자기 쪽 이익이 우선함을 밝혀 제시하는 논법은 법률가에게 중요한 능력이다. 그러나 그런 논리의 전개도 교실 아닌 공론장에서는 최소한의 보편적 타당성을 지녀야 한다. 말하자면 아무리 당찮은 주장을 하더라도 넘지 않아야 할 선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에서 윤 대통령을 변호하는 변호사들의 발언에서는 그 선을 넘는 일이 자주 눈에 띈다.
예를 들어 보자. 윤 대통령 변호인단 중 어느 변호사는 지난 17일 서울구치소 앞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정말로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면 우리도 저항권을 행사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는 이것이 전광훈 목사의 저항권 행사를 부추기는 선동과는 일반 시민들에게 주는 효과에서 성격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변호사는 법과 제도가 인정하는 자격을 얻은 사람이고 법률에서는 전문성을 공인받는 지위에 있기 때문이다. 법정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공론장에서 변호사가 법률용어를 써 가면서 하는 발언은 정확한 법적 지식과 논리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그것이 변호사의 직업윤리다. 그런데 저항권은 우리 헌법 조항에 없고 대법원 판례도 부정한 바 있다. 설령 이를 인정하는 입장에 선다고 하더라도, 위의 발언이 있었던 당시의 상황이 저항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는가. 요건별로 따져보자. 윤 대통령을 내란 혐의로 체포하려고 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하는 국가권력은 단순한 개별 헌법조항의 위반을 넘어 민주적 기본질서 또는 기본권의 체계를 전면적으로 부인하거나 중대하게 침해하고 있는가. 그런 부인이나 침해는 불법성이 객관적으로 명백한가. 우리의 헌법이나 법률에는 더 이상 다른 유효한 법적 구제수단이 없어 마지막으로 초법적인 저항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가. 저항권을 운위하던 변호사는 이런 걸 생각해 보고 발언한 것이었을까.
또 다른 예를 들어 본다, 윤 대통령의 변호인인 다른 어느 변호사는 지난 2일 “경찰기동대가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다면 직권남용 및 공무집행방해죄의 현행범이므로 경호처는 물론 시민 누구에게나 체포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영장을 집행하려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경호원이 당장 저항하는 것까지는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그렇게 직무를 수행 중인 경찰관을 다름 아닌 현행범으로 규정하여 시민이 체포한다는 것이 형사소송법상 가당한 일인가.
나는 윤 대통령 본인이 자기 방어를 위해 늘어놓는 갖가지 허언과 궤변과 억지를 법률가로서의 주장으로 보고 싶진 않다. 자기 자신이 불법한 계엄을 선포하고 그에 앞서 오랜 기간 내란을 기획 실행하고서도 외려 자신에 대한 탄핵과 수사에 맞서 “이 나라에는 법이 모두 무너졌다. 법치가 죽고 법 양심이 사라졌다”고 말한 것도 법적 의미를 가진 발언으로 볼 일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자신이 현재 피의자 신분이기 때문이다. 곧 대통령 직위에서 파면되고 형사법정에서 중형을 선고받을 위험에 처했으니 얼마나 다급하겠는가. 또 윤상현 의원이 서울서부지방법원 담장을 넘어 침입한 시위자들에 관해 “조사 후 훈방될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나, 그 법원에서 난동이 있은 후 전광훈 목사가 “윤 대통령을 우리가 구치소에서 데려나올 수 있다”고 말한 것도, 이들이 법률가가 아니어서 그 발언에 법적 함의를 인정하기 어려운 만큼 거기엔 그만한 정치적 사회적 책임을 지우면 될 일이다. 그러나 피의자를 변호한다는 변호사들이 완전히 잘못된 법적 메시지를 발하는 것은 다른 차원 문제다. 그것은 전문가에게 자격을 주어 그로써 벌이를 하게 만들어 준 국민에 대한 배임행위다.
의뢰인이 악마라도 변호사는 변호해야 한다는 주장에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오늘의 상황에서 변호사가 법적 근거 없는 발언으로 시민을 오도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엄정해야 할 법률가의 언어가 저잣거리에 선 선동가의 무책임한 언어에 가깝다니, 이래도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