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해진 대장 벽에 꽈리 모양의 주머니(게실)가 생겨 문제를 일으키는 게실 질환은 고령화에 따라 환자 수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예방을 위해선 섬유질과 수분 섭취를 늘리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그동안 견과류나 씨앗이 함유된 식재료가 게실 질환 위험을 높인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명확한 근거는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국내의 게실 질환 환자는 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보면 게실증·게실염·게실출혈 등의 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23년 6만7557명으로, 5년 전인 2018년(5만3297명)보다 26.8% 늘었다. 이 질환은 복통이라는 공통된 증상 때문에 흔히 맹장염이라 불리는 급성 충수염이나 과민성 장증후군 등으로 오인되는 경우도 많지만, 복통이 일시적이지 않고 아랫배에서 묵직한 느낌이 들다가 심한 통증으로 진행하는 특징이 있다. 나수영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게실 질환은 전염성도 없고 암으로 발전하는 질환은 아니지만 출혈이 발생할 수 있고 게실염으로 폐색, 고름집, 천공 등의 합병증이 동반되기도 한다”며 “복막염으로 진행하는 심한 경우에는 생명까지도 위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게실은 가성과 진성으로 구분한다. 가성 게실은 점막과 점막하층이 돌출되는 형태로, 대장 왼편에서 여러 개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진성 게실은 근육층을 포함한 장벽의 전층이 돌출되는 단일 게실 형태를 보인다. 대장 오른편에서 흔히 발생하며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에서 많이 나타난다. 다만 우측 대장에 생기더라도 게실이 여러 개 있다면 대부분 가성 게실일 가능성이 높다.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주요 요인으로 나이와 식습관이 꼽힌다. 나이가 들면 대장 벽이 약해지고 탄력성이 떨어지면서 혈관과 장관 근육 사이의 틈이 넓어지는데, 이 때문에 대장이 과도하게 수축하거나 압력이 높아질 경우 대장 벽의 약한 부위에 주머니가 형성된다. 65세 이상 인구의 절반 가량은 대장에 게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밖에 음주, 소염진통제 복용, 살코기를 많이 포함한 식단, 비만, 신체활동 부족, 흡연 등이 게실 질환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가 나온 바 있다.
다만 씨앗, 견과류 등이 게실을 막아 게실염을 유발한다는 기존의 인식은 근거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최근 연구에선 견과류를 비롯해 씨앗이 있는 과일·곡류 등을 섭취하더라도 게실증의 합병증 위험이 증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게실염의 위험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실 질환은 증상과 합병증의 정도에 따라 단순 게실증, 게실염, 게실출혈로 나눌 수 있다. 증상이 없는 단순 게실증은 대부분 치료가 필요하지 않지만 게실증 환자의 약 4%는 평생 한 번 이상 게실염을 경험한다. 게실염이 발생하면 항생제 치료와 금식 등으로 염증을 조절하며 심한 경우 수술적 치료까지 필요할 수 있다. 특히 좌측 게실염은 우측 게실염보다 염증과 합병증 위험이 더 높다. 게실증 환자 중 5~15%는 게실출혈이 발생하는데, 대부분의 출혈은 치료 없이도 멈추지만 멈추지 않는 경우에는 대장내시경을 통한 지혈술이 필요하다. 게실염이나 게실출혈 증상이 있을 때는 조기 치료로 합병증의 위험을 줄여야 한다.
노화가 주된 원인인 탓에 효과가 뚜렷한 예방법은 없다. 다만 평소 건강한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유지하면 게실 질환과 합병증의 발생 위험을 낮출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 건강을 위해 과일, 채소, 통곡물 등 섬유질 섭취를 늘리고 충분한 물을 마시면 도움이 된다. 또 규칙적인 운동은 장 운동을 활성화하고 변비를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준다. 나수영 교수는 “게실 질환은 장 건강의 경고등과 같다”며 “건강한 식생활과 생활 습관을 통한 게실 질환의 관리는 장 건강뿐 아니라 전반적인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