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지난해 총선 직전 김용현 등에 ‘비상대권’ 언급
여론전 통한 ‘거대 야당 압박’ 전략 안 먹혀
“왜 국민이 몰라줄까…비판 언론 탓으로 결론”
윤석열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경향신문을 비롯한 비판 언론사들의 단전과 단수를 직접 지시한 사실이 검찰 공소장을 통해 확인됐다. 윤 대통령은 야당이 22대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점하고 정부의 국정 운영을 ‘방해’하는 데엔 언론 보도가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 비판적인 보도는 ‘편향적’인 것으로 단언하고 자성하려는 노력보다는 언론 탓하기에 몰두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검찰의 공소장을 보면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전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 신원식 당시 국방부 장관 등에게 진지하게 ‘비상대권’ 조치를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22대 총선 직전인 지난해 3월 말~4월 초다. 이 시기는 채 상병 사건의 피의자였던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호주로 출국한 이른바 ‘런종섭’ 사태, 황상무 당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의 ‘언론인 회칼 테러’ 발언 논란으로 여당의 총선 패배 가능성이 커진 때였다. 선거 결과 더불어민주당은 175석을 차지했고 국민의힘은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총선 당시 대통령실에서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4일 기자에게 “당시 대통령실에서도 총선을 이기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결과는 예상보다도 처참해서 좀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총선 후 대통령은 거대 야당이 국정 운영에 협조해주기를 바라기보다는 야당이 여론의 압박을 받으면 정부를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며 “근데 여론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왜 국민들이 야당의 횡포를 몰라줄까 (생각하다 보니) 비판적인 언론 탓이라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여당도 비슷한 인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특정 언론사를 언급하며 “총선 후 당내에서는 일부 언론 보도가 총선 참패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됐다”며 “해당 언론사만 아니었으면 이 정도로까지 선거에서 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여권에 부정적인 이슈들은 대통령실에서 생산됐지만, 정작 총선에서 참패한 것은 이를 비판하는 언론의 탓으로 돌린 것이다. 이 같은 인식이 ‘반언론’ 기조로 발전해 여권 전반에 확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기 대선이 사실상 확실시되는 현재도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최근 대통령실 일각에서는 12·3 비상계엄 사태 관련 언론들의 보도가 “야당 편향적”이고 “불공정”하다는 불만이 나온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크게 오른 것은 진실이고, 윤 대통령 탄핵 찬성 여론이 높은 것은 진실일 리 없다는 인식이다. 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후 약 두 달 동안 대통령실이 배포한 공식 공지는 언론 보도들에 대한 반박과 언론사 고발 조치 안내가 주를 이뤘다. 국민의힘 미디어특위는 특정 언론사와 개별 기자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