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과 내란의 겨울 이후 세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대통령 윤석열의 공동체 파괴에 한마음으로 나섰지만, 광장을 밝힌 응원봉만큼 ‘새봄’의 꿈은 형형색색일 터다. 옥중의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윤석열 이후 사회대개혁을 위한 ‘정치 연합’ 화두를 쏘아올렸다.
그는 지난 2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수구·보수 진영은 권력 유지·연장을 위해 총집결하고 있다”며 ‘새로운 다수연합’을 제안했다. “자산·주거·건강 불평등 등이 국민의 최고 고통”이라 진단하고, 연합정치를 길잡이로 불평등·양극화·차별 없는 사회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김동연 지사는 3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조 전 대표 인터뷰를 공유한 뒤 “정권교체, 그 이상의 교체가 필요하다”며 공감을 표시했다. 이광재 전 국회 사무총장도 SNS에서 탄핵에 찬성한 정치인·국민이 함께하는 “국민연대”를 주장했다.
악마는 디테일 속에 숨기 마련이다. 조 전 대표의 다수연합은 ‘진보연합’에 가깝다. “이재명 대표가 발표한 ‘성장우선론’으로 다수연합이 가능한지 의문이 든다”는 일침이 단적이다. 광장을 함께하는 축제의 장으로 만들고, 남태령에서 농민과 연대하며 노동자들의 농성장을 찾은 다양한 가치의 진보적 시민들을 염두에 둔 것이다. 반면 이 전 사무총장은 합리적 중도·보수까지 포괄하는 ‘대연정’이다.
어느 쪽이든 다수연합론 근저엔 8년 전 미완으로 끝난 ‘촛불정신’이 자리한다. 민주당이 당시 승자독식 대신 촛불연정을 택했다면, 박근혜 탄핵에 저항한 ‘냉전적 보수’를 고립시켜 보수를 재편하고 진보사회를 보다 앞당겼을 거란 성찰이다. 그 경우 오늘날 극우의 발호도 없었을 것이다.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진보·중도 진영 내 이런 회한은 깊다.
다수연합을 위해선 정국을 주도하는 정치 세력의 전향적 사고가 필수적이다. 그들의 양보가 연합을 단단히 묶는 힘이 된다. 변혁 시기엔 생각이 다른 정치 세력, 시민들이 대화·양보로 통합을 이뤄낼 때만 새로운 사회의 기초가 생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서 말한다. “혁명이란 게 뭐야? 기껏해야 관청 이름이 바뀔 뿐”이라고. 이번 ‘빛의 혁명’도 그저 정권 이름 바뀌는 것으로 끝나선 곤란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