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가자지구 장악’ 발언을 둘러싼 비판이 커지면서 백악관과 국무부 등이 파장 축소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 자체는 “대담한 아이디어”(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라고 옹호하면서도 미군 파병 등 미국의 직접적인 개입에는 거리를 두는 식이다. 국제법 위반 및 제국주의적 행태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킨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은 국무부 장관과 핵심 참모들조차 기자회견을 보고서야 처음 알았을 정도로 전격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에도 “전쟁이 끝나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미국에 넘길 것”이라는 주장을 거듭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5일 브리핑에서 “대통령은 가자지구 재건 및 사람들의 임시 이주를 약속했다”며 “그곳은 철거 현장”이라고 말했다. 레빗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군 투입 가능성까지 시사한 것에 대해선 “아직 거기에 대해 약속한 것이 없다”면서 “미군을 가자지구에 파병할 계획이 없으며, 미국 납세자들이 재건 비용을 부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적대적으로 의도된 것이 아닌 매우 관대한 제안”이라며 “(불발탄과) 잔해를 치워서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재건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 특사도 이날 공화당 상원의원들과 비공개 오찬을 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 병력의 지상 배치도, 미국의 달러 지출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이들의 해명은 트럼프 대통령 구상의 목적이 어디까지나 ‘재건’이며, 미국의 자금 지출·병력 파병 등 ‘전략적 의무’를 지는 상황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이 가자지구를 “장기간 소유”하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제3국으로 ‘영구 이주’시키겠다고 분명히 말했다는 점에서 파문을 잠재우기에는 미흡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공화당 내에서도 “우리는 ‘아메리카 퍼스트’에 투표한 줄 알았다. 우리 군인들의 피를 흘리게 할 또 다른 점령을 고려할 이유가 없다”(랜드 폴 상원의원)는 등 비판이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실제로 행복하고 안전하며 자유로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것”이라며 “군인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동 지역 당사자들은 물론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트럼프 대통령의 가자지구 구상은 핵심 고위 당국자들조차 사전에 알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CNN은 국무장관임에도 중동 관련 임무가 상당히 축소된 루비오 국무장관이 TV를 통해 기자회견을 보고 이 내용을 처음 알았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사안에 밝은 네 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구상의 타당성을 검토하려는 기초적인 계획조차 없었다”면서 “대통령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넘어서는 것은 없었다”고 전했다. 국무부나 국방부 등 관련 부처 내 논의도 전혀 없었다고 한다.
앞서 이란에 ‘최대 압박’을 가하는 안보 각서에 서명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5일 이란과 ‘핵 평화 협정’을 체결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이 이스라엘과 협력해 이란을 산산조각 낼 것이라는 보도는 매우 과장된 것”이라며 “나는 이란이 평화적으로 성장하고 번영할 수 있는 확인 가능한 핵 평화 협정을 훨씬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란의 원유 수출 봉쇄 등 제재 강화를 선언했던 것과 달리 협상을 강조한 것은 일종의 강온 전략으로 보인다. 이란의 대리세력인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약화, 시리아 독재정권 붕괴 등으로 입지가 약화된 이란이 우라늄 농축도를 끌어올리고 있는 점을 고려해 강온 전략으로 이란을 압박, 최대한의 양보를 얻어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