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대외 원조 전담 기구인 국제개발처(USAID)를 폐지하면 미국의 국익도 손실을 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미국 국제구호 정책 연구자인 마이클 메리먼 로체는 5일(현지시간) 구호단체 미국퀘이커봉사위원회(AFSC) 홈페이지에 기고문을 내고 “미국의 해외 지원은 미국의 외교 영향력을 확대하는 명확한 도구”라며 USAID의 해외 원조가 수많은 생명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과 외국의 파트너십을 견고히 했다고 설명했다.
USAID는 냉전 시대인 1961년 존 F 케네디 행정부에 의해 만들어졌다. 미국은 소련의 영향력을 막기 위해 한국을 비롯해 전략적으로 중요한 국가에 중점적으로 개발 원조를 해왔다. USAID는 연간 약 400억달러(58조원)의 예산을 쓰는 세계 최대 개발 협력 기구로 몸집을 키웠다. 2023년 USAID 예산은 미국 연방 예산의 0.7%를 차지했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이 희생되고 있고, 다른 나라가 이익을 보고 있다”며 USAID 폐지 절차를 밟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오는 7일부터 직원 강제 휴직 처리를 할 예정이며, 워싱턴에 있는 USAID 사무실 출입을 막았다.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DOGE) 수장은 “USAID는 벌레 덩어리”라며 막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중국이 경제 구상인 일대일로 일환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등에 수십억 달러의 개발 자금을 지원하는 상황에서 USAID가 없어지면 미국의 소프트파워(강제력이 아닌 상대의 자발적인 협조를 이끌어내는 능력)가 저해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정부가 눈앞의 이익을 쫓다가 오히려 패권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에섹스대 나타샤 린드슈테트 행정학과 교수는 2013년 이후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라틴아메리카에 1조달러(약 1448조원) 이상을 지원한 중국이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를 얻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USAID 활동은 미국의 이익을 보존하는 데 필수적”이라며 “소프트파워 전장에서 미국의 (해외) 지원 공백은 중국에게 선물이다”고 학술매체 더컨버세이션에 기고했다.
미 의회와 행정부는 그간 일대일로가 개발도상국에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인정해왔다. 이에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제3세계에 공적개발원조(ODA)를 확대하면서 중국을 견제했다.
재해 현장 지원, 마약 퇴치, 인권 보호 등 광범위한 분야를 지원한 USAID가 사라지면 전 세계 치안이 불안정해져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AP통신 등 미 언론들은 USAID가 없어지면 무장 세력에 시달리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 주민들과 라틴 아메리카의 난민, 아마존 원주민,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등 광범위한 분야의 사회적 취약 계층이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뉴욕타임스는 선거 감시, 독립 매체 지원 등 민주주의 수호 명목의 보조금이 줄어들면서 러시아, 헝가리, 엘살바도르 등에 집권하고 있는 독재자들이 USAID 폐지를 반기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