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청 공개···“기존 동궁은 왕의 공간”
별도 정원, 배수체계 갖춰
상아주사위 등 태자 유물도 재조명
월성에서 의례에서 희생된 개 추가 발견
청상아리 이빨도
“햇살이 부드럽게 내리쬐던 1300년 전 어느 가을날 단풍이 물들고 원지 위로 햇빛이 반짝입니다. 태자는 손에 작은 상아 주사위를 만지작거리며 동궁을 거닐고 있습니다. 서쪽으로 높이 보이는 왕궁을 바라봅니다.”
2025년 국가유산청이 새로 그려본 신라 동궁의 모습이다.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에서 꼭 가봐야 할 여행지로 꼽히는 동궁과 월지. 그동안 월지 서편에 있던 동궁은 후대 왕위에 오를 태자가 머물던 공간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월지 동편에서 태자가 머물던 ‘진짜 동궁’이 발견됐다. 기존 동궁은 왕이 머물던 공간으로 추정된다.
국가유산청은 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국가유산청이 새로쓰는 신라사’ 언론 공개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최응천 청장은 “월지 동편에서 새롭게 조사된 ‘진짜 동궁’이 밝혀졌다. 동궁 건물지는 대지 조성 단계부터 왕과 태자의 공간에 위계를 두어 계획적 경관 조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동궁은 태자가 정무를 보고 기거했던 장소로 알려져왔다. <삼국사기>에는 “궁궐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진기한 새와 기이한 짐승을 길렀다”(674년), “동궁을 짓고 처음으로 궁궐 안팎 여러 문의 이름을 지었다”(679년)고 기록돼 있다.
이번에 ‘진짜 동궁’으로 밝혀진 곳은 복도식 건물에 둘러싸인 대형 건물지(정면 25m, 측면 21.9m)에 넓은 마당과 별도의 연못인 원지도 갖췄다. 너비 43.56m, 길이 17.2m의 원지는 두 개의 섬과 별도의 배수체계를 갖고 있었다.
월지 서편에 있는 건물지는 정면 29.1m, 측면 19.4m로 동편보다 규모가 크고, 해발고도도 2.3m가 높다. 국가유산청은 “기존 동궁으로 추정되던 월지 서편 건물터는 주변보다 높게 조성된 대지 위에 위치하고, 건물 자체의 위계가 높아 동궁으로 확정 짓기는 어려웠다”며 “월지 서편 건물지는 왕의 공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이 두 공간이 독립적으로 운영됐다는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진짜 동궁’에서는 태자가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세식 화장실도 발견됐다. 상하수도 개념이 적용된 배수체계를 갖췄다. 원형 석조 변기에서 용변을 보면 오물이 경사로를 타고 흘러내려 40㎝ 낮은 곳에서 뒤처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존 월지 주변에서 찾아낸 유물도 동궁의 발견과 함께 태자의 유물로 재조명되게 됐다. 동궁 북쪽에서는 2017년 상아로 만든 주사위가 발굴됐는데, 한 변의 길이가 약 0.7㎝로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신라시대 고급 놀이도구인 상아 주사위는 태자가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머리카락 한 올의 굵기보다 얇은 도구를 이용해 금박 위에 정교하게 새의 문양을 새겨넣은 선각단화쌍조문금박은 종교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상향을 위한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동궁의 진짜 위치를 찾아내면서 향후 유적 정비와 명칭 변경이 과제로 남았다. 원래 안압지로 불렸던 이곳은 2011년 ‘경주 동궁과 월지’로 명칭이 변경됐다. 국가유산청은 기존 동궁으로 불렸던 왕의 공간에 대한 명칭은 추가 조사연구를 통해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국가유산청은 2014년부터 시작한 신라 왕경(王京·신라시대 수도) 발굴조사 10년의 성과를 종합해 공개했다. 신라 월성(신라 궁궐이 있었던 도성) 일대에서 개를 의례 제물로 바친 흔적이 추가로 확인됐다. 국가유산청은 “지난해 10월 월성 서남쪽 일대 취락 끝자락에서 개로 추정되는 동물 뼈가 발견된 데 이어 희생된 개가 추가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두 마리 개는 대칭을 이루듯 왼쪽과 오른쪽에서 각각 발견됐다. 이번에 나온 개의 크기는 약 46㎝로, 지난해 발견된 개(60㎝)보다 작다. 위에서 아래로 힘이 가해져 목이 꺾이고 목뼈가 이탈한 개는 다리도 앞으로 가지런히 모여 의례를 위해 희생된 뒤 묻힌 것으로 보인다.
새로 발견된 개 주변에서는 날카로운 청상아리 이빨 12개도 함께 드러났다. 장신구 또는 활촉의 일부로 활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도 당시로서는 고급 물건이었던 옻칠 상자 안에 수정 목걸이가 들어 있었는데, 수정을 꿴 실도 함께 발견돼 상태가 매우 양호한 편이다. 국가유산청은 “사로국 시기 신라의 의례 모습을 밝히는 주요 실마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신라의 모체가 된 사로국은 4세기 중엽까지 이어졌다.
앞서 2017년 월성 성벽 아래에서는 50대로 추정되는 남녀의 뼈가 나와 사람을 제물로 바친 인신공희의 흔적으로 추정됐다.
최 청장은 “월성에서 성벽이 구축돼 왕성으로 전환될 때 중요한 시기에 의례가 진행됐다”며 “신라가 굳건히 이어져 나가길 바라는 신라인들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유산청은 2014년부터 신라 왕경 핵심 유적인 월성, 황룡사지, 동궁과 월지, 첨성대 등 총 14곳을 발굴조사하고 있다. 현재까지 유적 조사·정비를 위해 투입된 예산은 약 2902억원이다. 올해는 월성의 남쪽 성벽 조사를 마무리한 뒤, 성 내부 조사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