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정부는 동자동 쪽방 지역의 공공주택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가난한 이들을 쫓아내기만 했던 개발 역사에서 새로운 시도였고, 한 평 쪽방에서 살아온 주민들에겐 희망이었다.
기쁨도 잠시, 동자동 골목마다 빨간 깃발이 나부꼈다. 공공주택사업을 반대하는 건물주들의 표식이었다. 익숙하던 골목에 등장한 깃발 사이를 걷는 것은 고역이었다. 그것은 분명 공공주택사업 추진을 환영하는 주민들에 대한 경고였다. 주민들의 월세로 돈을 벌면서도 주민들을 무시하거나 꺼림칙해하는 쪽방 건물주들이 얼마나 많은가. 마을엔 잘 와보지도 않던 이들의 눈빛이 깃발이 되어 성성하게 나부꼈다.
4년이 지났다. 공공주택사업을 선언한 정부는 그간 사업을 한 치도 진척시키지 않았다. 시행의 첫 단계인 지구 지정조차 멈춰 있는 상태다. 계획대로라면 내년쯤 공공임대주택에 이주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쯤 되니 아예 추진하지 않으려는 것 아닌가 싶다.
사업이 멈춰 있다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어진 지 평균 60년은 되었을 건물들은 방치 속에 나날이 낡아가고, 가파른 계단과 비가 올 때마다 물이 새는 천장과 벽을 주민들이 고스란히 감내하고 있다.
가장 괴로운 것은 희망 자체가 고문이 되었다는 점이다. 사업 진척이 하루하루 미뤄질수록 ‘그러면 그렇지, 우리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턱 있냐’는 자조나 ‘왜 괜히 사람 들뜨게 했냐’는 힐난이 오간다. 계속 희망하는 일이란 마음의 근육을 요한다. 그럴만한 자원이 없는 이들을 단지 기다리게 하는 것만으로도 행정은 이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침해할 수 있다. 게다가 쪽방촌 주민들은 기다릴 시간마저 적다. 1000가구 남짓한 쪽방 주민 중 공공주택사업 발표 후 지난해 10월까지 세상을 떠난 사람은 111명이다.
사업이 멈춰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건물주들의 반발이다. 이들은 민간개발이 이루어지면 천문학적 이익이 생길 것으로 기대하는 듯하지만, 동자동은 이미 1978년 재개발구역으로 결정되었으나 지금까지 개발이 진행되지 않았다. 진작에 민간개발을 하지 못했던 이들이 공공개발을 핑계로 더 많은 혜택을 달라고 졸라대 사업 추진의 발이 묶여 있다.
동자동에서는 특이한 월세 계약서가 이따금 발견된다. 매년 주거급여에 맞춰 월세를 올리겠다는 ‘특약’이 추가된 내용이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주민들은 이것이 얼마나 큰 횡포인지 알고 있지만 막기도 어렵다. 복지재정이 가난한 이들의 통장을 잠시 스쳐 국가에서 자산가인 건물주로 이전되는 것이다.
동자동은 한국 주거정책과 시장 실패의 축소판이다. 개인이 최대한의 이익을 추구할 때 사회가 손해를 보도록 구조화된 부동산 시장의 연쇄 고리를 이제는 끊어야 한다. 내몰림 없는 공공개발과 쪽방 주민 주거권 보장은 그 시작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