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시크 충격과 경력선호 사회

2025.02.09 20:55 입력 2025.02.09 21:00 수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한 지난달 20일, 중국 인공지능(AI) 딥시크가 세상에 공개됐다. 설립된 지 1년 반 남짓 된 중국 스타트업이 만든 AI 모델이 미국 오픈AI의 챗GPT와 비교해도 성능이 크게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가 잇따르면서 전 세계가, 특히 미국인들이 충격에 빠졌다. AI 산업에서 미·중 패권 경쟁이 본격화된 것으로, 혹자는 중국이 ‘AI 실크로드’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전문가들 말을 종합해보면 딥시크에 놀라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오픈AI에 비해 훨씬 적은 비용과 인력으로 AI를 만들어낸 점이다. 딥시크 개발에 든 비용이 챗GPT의 20분의 1이고 인력은 9분의 1 수준이라는데, 정보 투명성이 높지 않은 중국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저비용 고성능’ AI 시대를 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처럼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지 않더라도 가성비 좋은 AI를 개발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점에서 국내 기업들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둘째, 딥시크 개발 설계도(소스코드)를 대중에 공개한 점이다. 설계도를 오픈한다는 건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해 사용하는 것은 물론 수정, 변형해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오픈소스’ 방식은 외부의 수많은 전문가들을 모델 검증과 개선에 참여토록 유도함으로써 성능을 끌어올리고 영향력을 확대하기에 유리하다. 딥시크가 세상에 나온 지 몇주 되지 않았음에도 벌써 딥시크 소스코드를 수정해 변형한 앱들이 쏟아지고 있다. 오픈AI가 이름과는 달리 자신들의 기술을 비공개에 부친 채 막대한 수익을 내왔는데, 중국 스타트업이 이 공식을 허물어뜨리며 한 방 먹인 셈이다.

셋째, 딥시크 연구인력이 대부분 해외 유학 경험 없이 중국 내에서 공부한 젊은 인재라는 점이다.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이 항저우시에 있는 저장대 전자정보공학과에서 학사·석사를 받았고, ‘AI 천재 소녀’라는 뤄푸리도 베이징사범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항저우 딥시크 본사 앞에는 전 세계에서 온 취재진이 진을 치고 있고, 량원펑이 나고 자란 광둥성의 시골마을은 학부모들의 ‘성지’가 됐다고 한다.

이들을 둘러싼 영웅담과 성공스토리가 쏟아지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주목한 부분은 딥시크 주역들이 20~30대의 젊은 사회초년생이란 점이다. 량원펑이 1985년생으로 이제 막 마흔이 됐고, 팀 리더급 대부분이 35세 미만이라고 한다. 량원펑은 지난해 5월 인터뷰에서 “핵심 기술적 역할은 대부분 신입사원이나 경력 1~2년 정도인 사람이 맡고 있다”고 했다. 과거 다른 인터뷰에서도 “단기 목표를 추구한다면 경험 있는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옳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경험이 그렇게 필요하지 않다. 기본적인 기술과 창의성, 열정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만약 딥시크의 주축이 관련 업계에 오랜 기간 몸담은 40~50대였다면 어땠을까. 수십년간 본인이 정답이라 생각하고 해온 방식 그대로 개발에 나섰다면, 이토록 세상을 뒤집어놓을 AI 모델을 내놓을 수 있었을까. 무모해 보이지만 기존 문법을 파괴한 혁신적인 시도나 상상력을 발휘한 도전이 가능했을까. 딥시크만의 얘기도 아니다.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을 개발한 때가 대학 재학 시절이었고, 2022년 챗GPT가 처음 나왔을 때 창업자인 샘 올트먼은 30대 중반이었다. 지금처럼 하루가 달리 변화하는 세상에서 기성세대의 노하우는 혁신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얼마 전 한국은행이 내놓은 분석은 한국 사회가 무엇을 고민해야 할지를 짚어준다. 신입보다 경력직 채용을 선호하는 기업이 많아지면서 20대 청년층이 취업에 더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이로 인해 그들이 평생 벌 수 있는 돈도 크게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신입보다 검증된 경력을 선호하는 사회, 혁신과 도전보다 안정과 유지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젊은 인재들이 갈 곳은 한정돼 있다. 한국의 이공계 인재들이 공대보다 평생 소득과 안정적인 미래를 담보하기 쉬운 의대로 쏠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다. 딥시크 쇼크에 정부와 정치권은 수십조원의 첨단산업 지원기금을 설치하겠다,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겠다고 한다. 청년들이 먹고살 걱정을 하지 않고 도전해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 기금이 됐든 추경이 됐든 돈을 투입하는 첫번째 목표가 돼야 할 것이다.

이주영 경제부문장

이주영 경제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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