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동의 물결 앞에서

2025.02.10 20:58 입력 2025.02.10 21:04 수정

한국 민주주의는 2개월 만에 두 번의 도전을 받았다. 한 번은 무장군인을 동원한 폭력적 방법에 의해, 또 한 번은 극단세력이 정치의 중심에 서는 비폭력적 방법에 의해.

폭력은 그 가시성으로 인해 시민들로부터 즉각 거부된다. ‘응원봉 시위’ ‘남태령 대첩’이 말해주듯, 민주주의 심화 의지를 불태우게 하는 역효과를 낸다. 한국 민주주의는 폭력으로부터 살아남았다. 비폭력적 도전으로부터도 살아남을까? 민주주의에 대한 진짜 위협은 내란이 아니라, 극단세력이 정치 중심으로 진입한 사건이다. 폭력엔 즉각 맞선 시민들도 극단주의 확산엔 속수무책이다.

내란 전까지 극우는 사회로부터 배제된 자, 고립된 존재였다. 그들과 사고방식을 공유하는 윤석열이 통치할 때조차 사회의 외톨이였다. 반동의 물결은 어디에서 갑자기 밀어닥친 것일까? 그것이, 잠자던 거인이 깨어나듯 깜짝 등장할 수는 없다. 지층 아래 거대한 에너지로 갇혀 있다가 지층을 뚫고 분출하듯 나타날 수도 없다. 그들은 그저 아스팔트 위의 사람들이었다.

극우적 사고에 어떤 매력적 요소가 있어서 그런 걸까? 유럽·미국 극우에는 그게 있다. 유럽·미국 극우는 세계화로 인한 빈부격차, 이민·인종 문제에 관한 불만을 조직해 사람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한국 극우는 세계화 피해자를 대변하지 않는다. 그 반대다. 노동자·농민을 적대시한다. 한국엔 이민·인종 갈등도 없다. 극우 이념을 찾는다면 반북·친미 정도다. 북한 체제 부정, 한·미 동맹 지지는 더 이상 갈등쟁점이 아니라 합의쟁점이다.

극우 존재 이유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공산 전체주의론, 부정선거 음모론, 중국 음모론뿐이다. 한국 극우는 이 세 개의 기둥 위에 세워진 허구의 건축물이다. 유럽·미국 극우의 배경인 사회경제적 불만은 정치가 해결해야 할 문제지만, 음모론은 믿음의 문제로 정치 밖의 일이다. 내란 전까지 국민의힘은 상상 세계에 사는 이들과 거리를 두었다. 민주주의 정당이 지켜야 할 최소 덕목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당 조직이나 이념, 지지자 구성 무엇으로 보든 온전하지 않은 한계 정당이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다. 결국, 그들은 극우를 정치의 중심으로 불러내 정치 주체로 승인하고, 정당성을 부여했다. 극우 부상은 대중이 먼저 극우화하고 국민의힘이 반응한 결과가 아니라, 초대한 결과다. 그렇지 않다면, 극우가 이렇게 성장할 수 없다.

극단세력과 국민의힘 간 극우동맹은 극단적 견해를 경청할 만한 의견으로 바꾸고, 폭력 사용의 문턱을 낮추며, 국가를 해결할 수 없는 갈등에 빠뜨린다. 이런 상황은 국민의힘에 불리한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부각한다. 그래도 극우동맹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진영 갈등이 생존공간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민주 대 반민주’와 ‘진영 대 진영’이라는 두 대립 구도는 경쟁 관계가 아니다. 진영 대결이 지배적 구도이고, ‘민주 대 반민주’는 하위 구도다.

이런 정치 구조에서는 모든 활동이 진영 승리라는 목표에 종속된다. 진영 대결은 누가 이기느냐의 게임이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활동도 우리 진영을 이롭게 하면 선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상대화한다. 진영정치는 누가 옳고 그른가를 겨루지 않는다. 한 진영이 민주적 가치, 규범, 진실을 주장할 수 있을지언정 두 진영이 공유할 수는 없다.

극우는 혐오, 적대를 무기로 하는 진영 갈등에 최적화된 존재다. 이미 효능감도 맛봤다. 진영 대립 구도가 견고하다고 생각하는 한 폭주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진영 대립은 극우 인큐베이터다. 사회의 외톨이와 한계 정당이 손잡은 것뿐인데 이렇게 민주주의를 효과적으로 공격하는 힘을 얻은 이유를 다른 데서 찾을 수 없다.

이제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무엇을 할지 분명해졌다. 극우동맹이라는 물고기가 활개치는, 진영 구도라는 이름의 수족관을 깨는 것이다. 국민의힘 진영을 공격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진영 대결 구도는 적대적 공존체제다. 상대 진영을 공격하면 할수록 진영 구도는 더욱 공고해진다. 더불어민주당이 구축한 진영을 먼저 부숴야 한다. 그래야 진영 대결 구도가 무너지면서 사안의 본질, 민주 대 반민주 전선이 또렷이 드러나고, 극우동맹이 서식지를 잃는다.

특정 지도자 중심으로 결속한 지금의 민주당으로는 이 과업을 수행할 수 없다. 민주당은 스스로 물어야 한다. 민주세력 전체를 포용하는 광범위한 연대를 위해 호두처럼 단단해진 민주당을 깰 수 있는가?

이대근 칼럼니스트

이대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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