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가 집어삼킨 한국정치

2025.02.11 20:50 입력 2025.02.11 20:57 수정

[강준만의 화이부동]유튜브가 집어삼킨 한국정치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계엄령 사태는 아마도 알고리즘 중독에 의해 촉발된 세계 최초의 내란 사건일 것이다.” 뉴욕타임스(2025년 1월5일)가 인용한 전 민주당 의원 홍성국의 말이다. 정말 그랬을까? 유튜브의 최고 상품 담당자(CPO) 닐 모한은 2020년 3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전체 유튜브 시청 시간의 70%가 추천 알고리즘에 의한 것이라고 했는데, 윤석열의 유튜브 중독도 바로 그런 경우일까? 혹 윤석열에게 가장 큰, 아니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존재인 부인 김건희가 미친 영향은 없었을까? 달리 말해, 김건희가 바로 알고리즘이 아니었겠느냐는 것이다.

김건희는 2021년 7월부터 12월 초까지 6개월 동안 53회에 걸쳐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는 매체 ‘서울의 소리’ 기자 이명수와 통화를 한 놀라운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총 통화시간이 7시간45분이나 된다. 그 통화 녹음 파일이 공개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는 건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다.

김건희는 2022년 5월10일 국회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 자신의 추천 몫으로 윤석열을 지지하는 극우 유튜버 및 채널 관계자 30여명을 초청했다. 윤석열 부부는 취임 뒤 처음 각계각층에 보내는 추석 명절 선물을 받을 명단에도 극우 유튜버들을 포함시켰으며, 이후 정치권 외곽에 머물던 극우 유튜버들을 공직에 진출시키는 등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보였다.

윤석열 부부의 지극한 유튜브 사랑은 여권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이었는데, 왜 모두 다 그걸 방치했던 걸까? 오늘날엔 유튜브 중독의 문제점이 널리 공유되고 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유튜브를 보는 시각이 훨씬 더 너그러웠다는 걸 감안할 필요가 있겠다. 2020년 2월16일에 방영된 <KBS 저널리즘토크쇼J>는 유튜브 문제를 다뤘는데, KBS 스스로 내건 제목이 “유튜브 악마화하는 언론의 장삿속”이다. 내용은 유튜브의 명암을 균형되게 잘 짚었는데 제목은 왜 그렇게 삐딱했을까?

당시에는 유튜브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평소 언론개혁을 주장해온 일부 진보파가 거의 기계적으로 내놓은 대답이 ‘기성 언론의 시기와 질투’였다. 유튜브를 대안 언론으로 높게 평가하는 진보파도 많았다. 답답한 노릇이었다. 디지털 혁명이 몰고 올 부작용은 특정 진영을 차별하거나 편애하지 않음에도 기존 언론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는 보수가 더 타격을 받을 거라는 생각에 유튜브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뿐 부작용에 대한 대응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말하기 어렵게 된 “유튜브 끊으라”

중앙일보 기자 성지원이 “대선 후보 유튜브 알고리즘 공개하기”(2024년 12월23일)라는 멋진 칼럼을 썼다. 윤석열의 유튜브 중독이 초래한 가공할 폐해와 충격을 감안컨대 “앞으론 대통령 후보의 유튜브 알고리즘이라도 불시에 공개 비교해보면 어떨까”라는 제안이다. “특정 주장에 경도되진 않았는지, 상식적 사고를 가졌는지 평소 보는 영상으로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더 주목한 것은 우리 모두 5~6년 전만 해도 정치인의 유튜브 중독을 가볍게 여겼다는 걸 실감나게 지적해준 대목이다. 그는 “2019년 자유한국당을 취재할 때가 먼저 떠오른다. 황교안 당시 한국당 대표는 유튜브에 심취했다. 볼 뿐만 아니라 직접 만들었다. 당 소속 의원들에게도 ‘각자 유튜브 채널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심지어 의원 평가에도 반영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특히 그는 극우 유튜버들을 자꾸 당 공식 행사에 불렀다. 기자회견은 유튜버들의 ‘황교안 띄워주기’ 질문으로 맥락이 툭툭 끊기기 일쑤였다. 단식을 할 때도 황 대표는 기자들 대신 유튜버와 전광훈 목사만 만났다. 그는 주말마다 유튜버들과 집회를 벌였고 (중략) 21대 총선 참패 후 스스로 부정선거 전문 유튜버가 됐다. 그에게 ‘유튜브를 끊으라’고 권한 사람은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도 유튜브에 심취했지만 주변에선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특이 취미 정도로 치부했다.”

한국 특유의 ‘쏠림’과 ‘소용돌이’로 인해 한국이 세계 1위 ‘유튜브 공화국’이 되면서 감히 ‘유튜브를 끊으라’고 말하기가 어렵게 된 분위기도 작용했다. 유튜브를 사랑하지 않으면 마치 시대에 뒤처진 사람처럼 여겨질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유튜브 통계분석 전문업체인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국내 광고수익 유튜브 채널은 인구 529명당 1개꼴로 세계 1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1년 전인 2019년 10월 구인·구직 매칭플랫폼 사람인이 성인남녀 354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전체의 63%(2233명)가 ‘유튜버에 도전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20대는 그 비율이 70.7%에 달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정치지도자의 유튜브 의존도·이용도도 세계 최고 수준이 되었다. 2024년 6월 전 국민의힘 의원 김웅은 “대통령님께 정말 유튜브 좀 그만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계속 이렇게 가면 정말 우리 모두 다 죽는다”며 눈물로 호소했지만, 윤석열은 듣지 않았다. 그는 2025년 1월15일 체포 직전에 관저를 찾아온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요즘 레거시 미디어는 너무 편향돼 있기 때문에 유튜브에서 잘 정리된 정보를 보라.” 자폭의 길로 빠질 정도로 유튜브 의존도가 매우 높았다는 점에서 윤석열을 ‘유튜브 대통령’으로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스타일이 전혀 다른, 상징적 의미에서 또 한 명의 ‘유튜브 대통령’이 있으니, 그는 바로 민주당 대표 이재명이다. 2024년 4월26일 이재명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국내 정치인 중 최초로 유튜브 100만 구독자를 증명하는 ‘골드버튼’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현역 국회의원 중 구독자 30만명이 넘는 경우는 이재명이 유일하다니 대단한 기록이다. 달리는 차 안에서도 유튜브 방송을 할 정도로 유튜브에 심취한 이재명은 국회 상임위 회의를 기존 방송들 외 유튜버들도 참관해서 생중계를 할 수 있게 하자는 주장까지 한 바 있다.

이재명 ‘유튜브 정치’는 괜찮을까

윤석열이 정보 수용자로서 유튜브 의존도가 높은 대통령이라면, 이재명은 정보 발신자로서 유튜브 이용도가 높은 야당 대표다. 윤석열에 비해 훨씬 바람직하긴 하지만, 이재명의 ‘유튜브 정치’엔 문제가 없는 걸까? 2021년 9월 민주당 내 대선 후보 경선 시 이재명과 이낙연 사이에 벌어진 ‘283 대 10’이라는 유튜브 격차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경향신문(2021년 9월2일) 취재 결과, 유튜브 구독자 수 기준으로 ‘친이재명 283만 대 친이낙연 10만’으로, 친이재명 쪽이 28배나 넘는 화력 우세를 보이는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이낙연 캠프는 ‘이낙연 때리기’에 앞장선 친명 유튜브에 대해 경기도의 금전적 지원 의혹을 제기했지만, 친명 유튜브들이 합동 공격을 예고하는 바람에 그냥 맥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283 대 10’이라는 유튜브 격차가 순전히 이재명의 정치적 매력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을까?

대구가톨릭대 교수 장우영은 “유튜브 정치·시사채널이 ‘유사 정당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치 유튜브 채널은 공천관리위원회처럼 의원 평가를 하고, 의원 지지율 여론조사를 발표하며, 총선 예비후보를 검증하거나 선거운동을 함으로써 사실상 정당의 핵심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유튜버들은 정당이 아닌 리더에 복무하길 요구하는 측면이 있다”며 “김어준씨가 여론조사를 하고, 박시영씨가 후보자에게 당대표에 대한 평가까지 (요구)하는 걸 보면 준(準)공천심사위원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17년 전인 2008년 미국 대선에선 ‘정치의 유튜브화’라는 표현이 유행했다. 동영상 중심으로 ‘보고 느끼는’ 이미지와 감성 중심의 정치담론이 ‘읽고 쓰는’ 텍스트 중심의 정치담론을 대체하는 경향을 가리킨 말이었지만, 이제 한국에선 그런 차원을 넘어 유튜브와 유튜버가 정당마저 집어삼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윤석열은 자폭했지만, 이재명이 극한으로 밀어붙인 한국형 ‘정치의 유튜브화’는 정치학 교과서에 나오는 정당 정치의 조직을 형해화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정치학 교과서를 다시 쓸 것인가, 아니면 ‘정치의 유튜브화’에 제동을 걸 것인가? 이게 앞으로의 쟁점이 될 것이다. 유튜브가 집어삼킨 한국 정치의 미래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겠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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