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방어 위해 ‘친미혐중’ 노골화하는 대통령

2025.02.12 15:14

윤 측, 부정선거론 주장하며 혐중 정서 부추겨

“레이건도 거부권 수 백번 썼다”며 책임 회피

미·중을 선악으로 단순 치환해 여론전 시도

“주변 강대국과의 갈등 대가는 온전히 국민에게”

지난 1월10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보수단체가 주최한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권도현 기자

지난 1월10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보수단체가 주최한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권도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과정에서 ‘친미혐중’(미국 우호·중국 혐오)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친미혐중 정서를 자극하며 이를 12·3 비상계엄 정당화와 여론전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현직 대통령이 외교적 파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기방어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이 12일 나왔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정당화 근거는 크게 부정선거 의혹과 야당의 국정 방해로 요약된다. 두 사안 모두의 배후에 야당과 중국의 결탁이 있다는 게 윤 대통령측의 인식이다. 이런 주장은 헌재 탄핵심판 변론 과정에서도 그대로 노출됐다. 윤 대통령 측은 전날 7차 변론에서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에게 “중국 정부가 정치 공작, 가짜뉴스, 사이버전 등을 종합해 많이 사용”한다며 “그런 정도의 중국이라면 한국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선거 개입을 위한 시도는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라고 물었다. 신 실장은 “가정을 전제로 (한 질문에는) 외교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답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계엄 직후인 지난해 12월12일 대국민 담화에서는 국내에서 국가정보원을 촬영하다 붙잡힌 한 중국인 사례 등을 “간첩”과 연결짓고 야당이 집권하면 “중국산 태양광 시설들이 전국의 삼림을 파괴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는 “깊은 놀라움과 불만을 느낀다” “(한국이 내정 문제를 중국 관련 요인과 연관시켜)비방하는 것을 단호히 반대한다”고 반발했다. 윤 대통령 측은 이후 헌재 답변서에서 “(민주당이) 이 땅을 중국과 북한의 식민지로 만들려 한다”고 했고, 윤 대통령은 “(청년 세대 연설에) 친중 세력에 대한 반감이 담겨 굉장히 감동 받았다”고 하는 등 혐중 정서를 반복적으로 부추겼다.

이런 주장은 국민의힘과 지지자들을 통해 시민 사회로 급격히 확산했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집회에서 지나가던 시민이나 언론인을 붙잡고 “중국인이냐” “시진핑 욕해봐라”며 사상 검증을 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의 한 의원은 기자에게 “한국 사람들은 중국을 특히 싫어하고 2030 세대는 더욱 싫어한다”며 “(청년층이) 더불어민주당을 선택하지 않는 주요 요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미국을 거듭 언급한 것 역시 집회에 성조기를 들고나오는 극우 지지층을 선동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윤 대통령이 안보 문제를 자신의 방어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윤 대통령의 이런 언행은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반중 기조를 밀어붙이면서도 북한과의 직접 대화 가능성을 열어뒀고, 한국에 대한 철강 관세 면제는 폐지하기로 했다. 가치 기반 연대를 강조한 조 바이든 전 행정부와는 달라진 흐름이다.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이념적 접근만으로는 국익을 극대화하기 힘들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미국만큼이나 중국도 우리와 미래 먹거리, 북한 문제 등 많은 게 얽혀 있어 굉장히 중요한 나라”라며 “주변 강대국과 갈등 구조를 이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 비용과 대가는 결국은 강대국도 아닌 이 나라와 국민이 온전히 받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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