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덕여대 ‘구호·노래 금지’ 요구에 법원 “집회·시위·구호·노래 제창 금지는 위헌”

2025.02.12 15:52 입력 2025.02.12 16:09 수정

서울 종로구 관훈동 동덕빌딩 앞에서 동덕여자대학교 학생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나 9일 ‘민주동덕에 봄은 오는가 : 동덕여대 학생 탄압 규탄시위’를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서울 종로구 관훈동 동덕빌딩 앞에서 동덕여자대학교 학생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나 9일 ‘민주동덕에 봄은 오는가 : 동덕여대 학생 탄압 규탄시위’를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동덕여자대학교 측이 ‘공학 전환 반대’ 시위에 나선 학생들의 본관 점거, 현수막 게시, 구호 제창 등을 금지해 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지난 10일 기각했다. 서울북부지법 민사1부(부장판사 오권철)는 “채권자(총장 등)는 학교 ‘점유관리권’의 주체가 아니다”라며 “집회·시위를 막아달라는 요구는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위헌적”이라 판단했다.

“근조 화환 설치, 노래·구호 제창 시 1일 100만원 지급” 요구한 학교

12일 법원의 결정문을 보면 학교 측은 ‘학생들이 건물 점유를 풀고 앞으로도 건물 점거·시위 등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달라’고 법원에 요구했다. 구체적으로는 “건물 점거 등의 방법으로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 래커·페인트 등 이용한 낙서, 오물 투척, 근조화환 설치, 현수막·사진 게시, 북·앰프 등의 도구를 사용한 구호·노래 제창 등의 행위를 하거나 제3자가 이러한 행위를 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또 “이러한 명령을 어길 시 채무자(총학 등)는 채권자(총장 등)에 위반 일수 1일당 100만원씩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학교 측의 요구사항을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간접 강제(위반 1일당 100만원 지급)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학교는 ‘점유관리권’의 주체가 아니다

서울 성북구 동덕여자대학교 교정에 지난해 11월 학교 측의 남녀공학 전환 추진에 반발하며 학생들이 적은 대자보와 메시지 등이 붙어 있다. 성동훈 기자

서울 성북구 동덕여자대학교 교정에 지난해 11월 학교 측의 남녀공학 전환 추진에 반발하며 학생들이 적은 대자보와 메시지 등이 붙어 있다. 성동훈 기자

학교 측은 학교 건물이 ‘교육용 기본 재산’이고 총장 등은 지배권자·관리자이므로 건물에 대한 점유회수청구권(점유를 빼앗긴 자가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학교는 교육을 위한 시설에 지나지 않아 권리 능력의 주체가 될 수 없으므로 총장 등이 점유관리권의 주체도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총학생회 등이 ‘본관 점거를 주도했다’고 보기 어려운 점도 기각 사유로 꼽혔다. 그간 학교 측은 총학생회를 시위의 주동자로 보고 간담회에서 이를 따져 묻고 형사 고발도 했다. 재판부는 “총학생회의 ‘대응을 기다려 달라’는 공지에도 학생들이 ‘총학생회와 별개로 시위를 하자’는 취지의 글을 게시해 왔다”며 “점거 행위가 총학 등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했다.

“학교 측 요구 지나치게 광범위…헌법상 집회·시위·표현의 자유 존중돼야”

‘민주없는 민주동덕’ 연대가 주최한 동덕여대 연대 집회가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인근에서 열리고 있다. 정효진 기자

‘민주없는 민주동덕’ 연대가 주최한 동덕여대 연대 집회가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인근에서 열리고 있다. 정효진 기자

재판부는 학교 측의 요구사항이 지나치게 광범위하다고 봤다. 근조화환 설치, 현수막·사진 게시, 구호·노래 제창을 금지해달라는 요구가 과도한 기본권 제한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법원은 “집회·시위·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돼야 하고 가처분을 통한 금지는 엄격한 제한 아래 이루어져야 한다”며 “(집회·시위) 행위를 일괄 금지하는 것은 헌법상 집회·시위·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에 비추어 허용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시점을 기준으로 유사한 수준의 행위가 추가로 발생했다는 자료가 제출되지 않았다”며 “가처분을 명하지 않았을 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음이 고도로 소명됐다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이번 법원 판단과 별개로 학교 측은 학생들에 대한 형사 고발·징계 절차를 이어갈 예정이다. 학교 측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된 다음날인 지난 11일 학생들에게 징계 절차 관련 4차 내용증명을 보냈다. 총학생회 소속 학생 등 20여명에 대해 형사 고발도 진행 중이다.

동덕여대 재학생 연합은 지난 2월 11일 성명에서 “가처분 신청은 기각됐지만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학내 민주주의와 여대를 지키기 위해 연대해준 많은 페미니스트, 시민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오는 3월에도 학교 측을 규탄하는 시위를 이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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