찹쌀이 생겼다.
지난해 농촌청년공유주택 덕산휴가의 건축비 모금 소셜펀딩에 참여했던 시민건축주 단톡방에서 청년들이 농사지은 쌀 공동구매가 있었다. 벼농사 농기계대금 마련을 위한 공동구매다. 나도 가치소비에 참여해 찹쌀 10㎏을 샀다. 이 쌀로 무얼 할지 아내와 상의한 끝에 떡을 해서 이웃과 나누기로 했다.
나는 공동체주택에 살고 있다. 10가구가 모여 함께 집을 짓고 이사 오면서 동네 분들 모시고 음식도 대접하고 떡을 돌렸다. 이사 오는 날 주민들은 마을 입구에 우리의 입주를 환영하는 현수막을 걸어주었고 우리는 선주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것이다. 설도 다가오고 그날 생각도 나고 해서 고마운 이웃들께 떡을 돌리기로 한 것이다.
혼밥이 일상인 시대지만 ‘혼떡’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떡은 공동체적인 음식이고, 나눔의 문화와 깊이 연결돼 있다. 예전엔 이사를 오면 이웃에게 떡을 돌리는 게 자연스럽고 흔한 일이었다. 떡을 돌리면서 덕담을 주고받다 보면 웃음이 나오고 자연스럽게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아득한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아파트로 대표되는 공동주택의 주거문화에서 개인주의적 생활방식이 강해지면서 이웃은 불편한 존재이자 원치 않는 관계가 됐다. 어쩌다 만나도 서로 모른 척하는 것이 새로운 예의다. 이동성이 강한 도시에서 거주기간이 짧고 이사가 잦다 보니 정붙일 틈이 없기도 하다. 마주치는 이웃도, 환영의 인사도 없이 이사는 그저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짐을 옮기는 일로 끝난다. 사라진 것은 떡이 아니라 이웃이다.
설을 앞둔 일요일 오후에 따끈한 팥시루떡을 찾아와서 어머니와 함께 동네 어르신들께 직접 돌리고, 저녁엔 매달 열리는 이웃들과의 식사 모임에서 “덕분에 잘 살고 있습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전했다. 다들 “이게 웬 떡이냐”며 좋아한다.
‘돌린다’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보니 그 의미가 깊다. 받은 걸 돌려준다는 교환이나 거래가 아니고 일방적으로 베푸는 시혜의 의미는 더욱 아니다. “내가 받은 것을 나도 다른 사람에게 다시 돌려준다”는 이 행위에는 순환, 분배, 확산, 전달의 의미가 담겨 있다. ‘돌린다’는 단순한 나눔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떡을 돌리려면 직접 사람을 만나야 한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떡을 준비하고, 일부러 찾아와서 건네준다면 그 손길 속에서 따뜻한 마음을 더 깊이 느끼게 된다. 떡을 돌리는 행위는 ‘나는 당신과 좋은 관계로 잘 지내고 싶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떡을 돌리는 일은 불편하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 속에 관계가 싹트고 공동체가 형성되는 힘이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오히려 이런 ‘불편한 나눔’이 더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클릭 한 번이면 편하게 보낼 수 있는 모바일 쿠폰에는 담을 수 없는 많은 이야기와 가치가 떡에 담겨 있다.
이웃이 사라진 시대라고 하지만, 내가 가진 작은 것 하나라도 마음을 담아 돌리다 보면 관계를 잇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님을 깨닫는다.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기억하는 일. 그것이 우리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관계의 본질이 아닐까. 어쩌다 떡 한번 돌려 보니 내 생각도 돌고 돌아 이야기가 너무 멀리 나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