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약자 프레임’을 활용하고 있다. 거대 야당의 폭거 때문에 비상계엄 선포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논리로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다수 야당의 국회 운영은 법 테두리 내에 있어 비상계엄 선포의 명분이 될 수 없고, 윤 대통령은 거부권(재의요구권)과 시행령으로 야당에 맞섰던 ‘강자’였다. 탄핵소추된 윤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후에도 대통령직 복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고 여권의 ‘약자 프레임’이 작동하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여당 내부에서 나온다.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변론 과정에서 계엄선포 이유로 야당 탓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1일 7차 변론기일에서 “제가 취임할 때 야권은 선제 탄핵을 주장하며 계엄 선포 전까지 무려 178회 퇴진과 탄핵을 요구했다”며 “(여당의) 의석수도 100석 조금 넘는 의석 갖고 어떻게든 야당 설득해서 뭘 해보려고 한 건데 문명국가에서, 현대사에서 볼 수 없는 줄탄핵을 하는 건 대단히 악의적이고 대화·타협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이 정권을 파괴시키는 게 (야당) 목표라고 하는 걸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국회에) 예산안 기조연설을 하러 가면 아무리 미워도 박수 한 번 쳐주는 게 대화와 타협의 기본인데, 취임하고 갔더니 아예 (야당 의원들이) 의사당에 들어오지도 않아서 여당 의원만 보고 반쪽짜리 예산안 기조연설을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국민의힘 의원은 13일 통화에서 “윤 대통령이 체포되고 구속된 뒤에야 대통령이 야당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국민이 알아주기 시작했다”며 “대통령이 약자라는 것이 이제서야 드러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윤 대통령의 약자 코스프레 전략을 차용하고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 11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민주당’을 44차례, ‘이재명’을 18차례 언급하며 대야 비판에 집중했다. 야당에 협조를 부탁하는 통상의 여당교섭단체 대표연설과는 달랐다. 권 원내대표는 “29번의 연쇄 탄핵, 23번의 특검법 발의, 38번의 재의요구권 유도, 셀 수도 없는 갑질 청문회 강행, 삭감 예산안 단독 통과. 이 모두가 대한민국 건국 이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처음 있는 일”이라며 “단언컨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국정 혼란의 주범, 국가 위기의 유발자, 헌정질서 파괴자는 바로 민주당 이재명 세력”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지도부의 한 의원은 기자에게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민주당이 마음대로 하지 않은 게 무엇이 있느냐”며 “탄핵소추 이후엔 민주당 집권기였다. 이제는 철저하게 (국민의힘은) 야당 전략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이 탄핵소추되고 구속기소된 이후에 여권의 이미지가 약자로 전환된 것이 보수세력 지지율 결집의 주요 이유로 본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이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소추안을 국회에서 가결하면서 여론 지형이 반전됐다고 해석한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통화에서 “한 총리 탄핵소추 전까지는 ‘윤석열 심판대’였다면, 그 이후엔 ‘이재명 시험대’였다”며 “국민이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의 수권 능력을 계속 평가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내부에선 약자 프레임의 최대 걸림돌이 윤 대통령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윤 대통령이 약자 이미지가 아닌 데다, 헌재 탄핵심판과 형사재판 과정에서 더 극단적인 태도를 보이면 여권에 부담이 될 수 있어서다. 같은 약자 전략을 취하고 있지만 조기 대선에서 보수세력 결집을 위한 ‘땔감’으로 윤 대통령을 활용하려는 국민의힘과 권좌 복귀를 노리는 윤 대통령의 이해관계가 근본적으로 불일치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또 다른 국민의힘 의원은 기자에게 “구치소에 면회 다녀온 의원들 얘기가 윤 대통령이 더 건강해지고 눈빛이 또렷해졌다, 윤 대통령은 복귀까지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권력을 내려놓지 않겠다고 나서면 그때는 정말 답이 없다”며 “윤 대통령은 강자 이미지가 있어서 언제든 약자 프레임이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