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해직 ‘호텔 요리사’는 왜 10m 고공에 올랐나

2025.02.13 15:58

고진수 세종호텔 지부장이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고공농성에 돌입한 13일 서울 중구 세종호텔 앞 구조물에 고 지부장이 올라가 있다. 정효진 기자

고진수 세종호텔 지부장이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고공농성에 돌입한 13일 서울 중구 세종호텔 앞 구조물에 고 지부장이 올라가 있다. 정효진 기자

20여 년 경력의 호텔 요리사가 흰 주방장 모자가 아닌 빨간 띠를 머리에 두른 채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고진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 지부장(52)의 이야기다. 고 지부장은 13일 오전 5시, 왕복 6차선 도로 한가운데 놓인 10m 높이 철제 구조물(지하차로 진입차단 시설)을 올랐다.

도로 바로 옆 서울 중구 세종호텔은 고 지부장이 2001년부터 20년간 출퇴근한 일터다. 그는 2021년 정리해고된 후 동료들과 함께 3년 넘게 복직 투쟁을 해왔다. 호텔은 응답하지 않았다. 고 지부장은 이날 영하 5도의 날씨에 운신할 공간이 1㎡도 되지 않는 고공에 올라 ‘복직’을 외쳤다.

세종호텔은 코로나19가 극심하던 2021년 8월 경영이 악화했다며 노동자 대표들과 ‘구조조정 협의체’를 꾸려 전환배치와 희망퇴직 등을 실시했다. 32명이 희망퇴직 했고 퇴직을 거부한 12명은 정리해고됐다.

세종호텔 해고노동자들은 이 정리해고 뒤에 해묵은 ‘노동조합(노조) 혐오’와 ‘비정규직 전환’ 문제가 숨어 있다고 말한다. 노조법 개정으로 2011년 7월부터 복수노조가 허용돼 새로운 노조(세종연합노조)가 생기면서 민주노총 소속 노조(민주노조)는 소수노조가 되었다. 정리해고된 12명은 모두 민주노조 소속이었다.

해고노동자 허지희씨(54)는 “민주노조 조합원들은 해고 전에도 강제 전환 배치를 당해왔다”며 “30년 근무한 한 조합원은 객실 관리와 하우스키핑 등 12군데를 옮겨다니다 해고됐다”고 했다. 세종호텔에서 20년간 전화교환원 일을 하던 허씨도 “마지막엔 객실 관리(룸메이드) 일을 6년 하다가 주방으로 전환 배치됐었다”고 했다.

이들은 코로나가 종식되고 사업장이 정상화된 지금은 복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호텔은 직원을 줄이고 그마저도 상당수 비정규직으로 구성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고 지부장은 “10년 전 250명이 넘는 정규직들이 가족처럼 일하던 일터가, 이젠 고작 20명뿐인 정규직에 하도급 노동자를 포함해도 60명도 채 되지 않는 일터가 되었다”고 했다.

해고노동자들은 지난 3년간 세종호텔 앞에 ‘부당 해고’를 주장하는 농성장을 차리고 복직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법적으로 해고의 위법성을 인정받지는 못했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은 이들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의 2심 패소 판결을 심리불속행으로 확정했다.

고 지부장은 “정리해고의 부당함과 복직의 당연함을 알리기 위해 고공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침낭과 깔개와 확성기를 겨우 가지고 올라갔다고 했다.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 현장에는 경찰과 119 구급대 차량이 상주하고 있다.

서울 중구 세종호텔 앞에서 13일 고진수 세종호텔 지부장 고공농성 돌입 입장발표 긴급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뒤쪽으로 고 지부장이 보인다. 정효진 기자

서울 중구 세종호텔 앞에서 13일 고진수 세종호텔 지부장 고공농성 돌입 입장발표 긴급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뒤쪽으로 고 지부장이 보인다. 정효진 기자

이날 고공농성 소식이 알려지자 각지에서 연대의 마음을 안고 온 활동가와 시민들이 현장으로 모였다 . 이날 오전 9시 긴급 기자회견엔 50여명이 참석했다. 대학생 윤효진씨(21)는 “학교에 있다가 달려왔다”며 “엄동설한에 고공농성을 하는 심정을 헤아릴 수 없지만, 노동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위해 연대할 것”이라고 했다. 동료 허씨는 10m 상공의 고 지부장을 바라보다 눈물지었다. 그는 “호텔 앞 농성장에서도 차가 지나가는 진동이 다 느껴졌는데, 저 위는 어떻겠나”며 “살자고 복직 투쟁을 하는 것인데, 동지가 위험한 곳에 있는 걸 보니 마음이 무너진다”고 했다.

12명으로 투쟁을 시작한 해고 노동자는 이제 고 지부장을 포함해 6명으로 줄었다. 생계 등을 이유로 농성을 그만둬야 하는 이들이 있었다. 고 지부장은 “복직 없이 물러서지 않겠다”며 시민들의 연대를 촉구했다. 세종호텔 측은 ‘고공농성에 대한 입장’을 묻는 말에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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