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애도는 저마다 독특하다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애도의 슬픔은 때때로 신체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유독 비탄에 빠지고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2023년 11월 출간된 <선생님을 위한 애도 수업> 중 ‘학교에서의 애도에 관한 일반적 지침’에 담긴 내용이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이사장인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와 현직 교사 3명이 함께 썼다. 세월호 참사(2014년), 이태원 참사(2022년) 등을 거치며 학교에서 학생과 교사의 죽음과 애도를 직면해야 했다. <선생님을 위한 애도 수업>은 참사 이후 교사와 학생을 위한 일종의 애도 안내서로 제작됐다.
지난 10일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40대 교사가 김하늘양(8)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 뒤 여러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특히 같은 학교에 다니거나 근무하던 학생·교사의 정서적 고통은 가늠하기 어렵다. 대전교육청은 교원과 학생 대상으로 트라우마 위기 대처 긴급 상담, 심리 상담 등을 지원하고 있다. 김 교수는 “성인들은 모두 교사를 과거에 만난 적이 있고 학생들은 매일 선생님을 만나다보니, 사람들은 교사가 가해자인 이번 사건을 더 크게 받아들이는 측면이 있다”며 “가해자가 예상치 못했던 너무 가까운 사람일 때 받는 정신적 충격이 더 크다”고 했다. 다음은 김 교수와 일문일답.
-피해자와 같은 학교에 다녔던 학생들의 정신적 충격을 가늠하기 어려워 보인다.
“우리랑 다소 문화적 차이는 있지만, 서구의 경우 죽음을 부정하는 얘기를 권하진 않는다. 죽음의 이유는 앞으로 밝혀질 것이고, 누군가의 죽음은 굉장히 슬픈 일이라고 아이들에게 알려준다. 어떻게 슬퍼하고 어떤 말을 하면 안 되고 장난치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한 사람이 죽었을 때 어떤 반응을 해야하는지 일종의 예절을 가르치는 것과 유사하다. 다시는 볼 수가 없다는 것도 설명한다.”
-피해자가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다. 또래 친구들도 나이가 매우 어린 편이다.
“어른들이 아이에게 죽음을 잘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죽음에 관해 찾아본다든지, 친구의 죽음에 너무 과도하게 사로잡힌다든지, 죽음에 오해를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너무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좋지 않다.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춰서 설명해주는 게 중요하다. 초등 저학년은 죽음을 조금씩 이해하는 단계에 있다. 죽음을 완전히 이해하는 단계는 아니다. 사건과 사건을 둘러싼 상황을 너무 리얼하게 설명하는 것도 바람직하진 않다.”
-혹시 교사와 마주침을 두려워 하는 학생이 있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일부 그런 학생도 생길 수 있다. 선생님들의 보살핌이 중요한데, 일부 아이들은 어려움을 마음에 숨긴 채로 살아갈 수도 있다. 이때 필요한 경우에는 학생에게 꺼내놓고 얘기를 하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모든 학생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아주 드물겠지만 어떤 게 무섭다든지 불안한다든지 하는 학생이 있을 때에는 필요하다는 의미다.”
-학생들이 스마트폰 등을 통해 이번 사건을 둘러싼 뉴스를 많이 접하게 될 것 같다.
“대형 참사 등이 일어나면 어린이들에게 뉴스를 권고하진 않는다. 뉴스를 너무 자주 보면 세계가 불행해지는 것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가 직접 뉴스를 보게 하는 것을 조절해줄 필요가 있다.”
이 시기(유치원·초등 저학년) 아동은 이전보다는 죽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동화적 환상이 여전히 있지만 일단 죽음이 생명의 종말이라는 현실을 이해할 수 있는 인지적 발달 단계에 있습니다 ’죽으면 더 이상 만날 수 없다, 죽으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사실은 알지만 이성적으로 이런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거나 수용하는 단계는 아닙니다.
-또래 학생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이다보니 사건을 받아들이는 편차도 클 것 같다.
“교사나 부모가 설명하고 함께 애도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않게 받아들이는 학생들을 발견할 수 있다. 사건 이후 다시 등교를 했는데 어떤 아이들이 힘들어하는지, 이런 부분을 잘 파악해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잘 도와주는 게 필요하다. 서구에서는 사건이 일어나면 학생들을 학교로 오게 해 설명을 직접하거나, 온라인으로도 설명을 해준다. 학생들이 슬픔을 어떻게 느끼는지 봐주고 어른이 모델이 되어주는 작업이다. 어려운 일이 발생했을 때 흩어지는 게 아니라 같이 모여 슬퍼하고, 그 상황을 오해없이 함께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이번 사건을 보고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교사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선생님들은 자기 자신을 잘 살폈으면 한다. 이번 사건으로 본인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 잘 살피고 애도에도 나서고, 그 다음에 여러가지 교사들이 어떻게 해야 한다는 식의 뉴스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한다. 교사 자신을 돌보는 게 우선이다.”
-정부는 교사의 질병과 관련해 교육감이 직권휴직을 할 수 있게 하는 등의 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다.
“응급조치의 차원에서, 교사들을 살펴보겠다는 취지라면 그런 조치를 하지 않을 순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아주 단기적인 정책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하늘이 아버님도 심신미약 교사들이 치료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전반적인 교사들의 소진과 건강 상태를 제대로 돌볼 수 있어야 한다. 이 사건에 초점을 맞추진 않았으면 한다. 전반적인 교사들 상태가 어떤지, 교사들의 이제 정신건강이 안 좋다고 했을 때 지금까지 어떻게 대처해왔는지를 두루 살펴봤으면 한다.”
-큰 틀의 정책만이 아니라 교육청이나 학교 단위에서의 애도, 대응도 중요해보인다.
“학교 교사들이 학교를 옮기고 싶어한다든가, 학생들도 다른 데로 가고 싶어할 수도 있는데 이런 때일수록 교육청과 교장선생님을 포함한 분들의 리더십이 정말 중요하다고 본다. 슬픔과 애도의 과정을 서로 보듬고 껴안으면서 갈 수 있어야 한다. 정부나 교육청, 지자체에선 학교의 회복에 관해 모든 것을 지원해야 한다. 심리지원을 포함해 학생, 학부모, 교사가 원하는 것을 충실히 듣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즉각적 회복이 필요하다는 의미인 것인가.
“다른 나라에도서도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비극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 일을 겪은 나라 중에서 회복을 위해 노력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우린 이미 알고 있다. 남은 학생들을 돌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다만 지금은 이제 사건을 중심으로 너무 ‘사건화’만 부각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회복에 관한 이야기가 너무 뒤로 미뤄지면, 이 시기에 받은 학생, 교사, 학부모 그리고 지역주민이 받는 상처가 너무 커진다. 가해자 처벌, 희생자 애도와 함께 지역사회 회복도 같이 이야기해야 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