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엔 반대 측 집회 참가자들 대거 ‘집결’
오후 4시 넘자 찬성 측 참가자들 속속 합류
“더 나와달라”…물리력 대신 지지와 응원 호소
5.18 민주화운동의 ‘성지’인 광주광역시 금남로에서 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도합 3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지만, 우려됐던 양측 간 충돌 등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반목과 대결보다는 더 많은 응원과 함성을 호소하고 나선 광주시민들의 성숙한 ‘민주의식’이 돋보인 하루였다.
“광주시민이 이겼습니다. 대한민국을 지켰습니다”
“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가 동시에 열린 15일 오후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일대. 오후 4시30분쯤 탄핵 찬성집회 측의 ‘승리 선언’이 나오자 우뢰와 같은 시민들의 함성으로 뒤덮였다. 시민들은 서로의 손을 맞잡고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이 시각 기준 주최측 추산 찬성 집회 참가자는 2만 여명으로 반대 측(1만 명·신고 기준)을 압도했다.
집회는 개최 전부터 초유의 관심사였다. 경찰은 “충돌을 막겠다”며 가용한 모든 경력을 동원했다.
오전에는 반대 측의 기세가 등등했다. 이른 아침부터 전국 각지에서 온 전세버스 수십여대가 금남로 일대에 모여들었다. 반대 집회 주최 측인 보수 성향 개신교 단체 ‘세이브코리아’가 전국 각지에서 수송한 참가자들이다.
버스에서 내린 이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윤석열 대통령 탄핵 무효’를 외쳤다. 비슷한 시각 거대한 스피커가 달린 검은색 차량이 나타나 도심을 누볐다. 차량에선 “빨갱이” “X재명” 등 혐오와 욕설이 흘러나왔다.
오후 1시가 되자 금남로 일대는 이미 ‘자유대한민국을 지키자’ ‘헌재는 북한 인민재판소’ 등 피켓과 태극기, 성조기 등으로 물들었다. 경찰은 주최 측이 1만명으로 집회신고를 했다고 밝혔다. 역대 광주에서 진행된 보수 성향 집회 가운데 가장 많은 인원이다. 경남 창원에서 왔다는 20대 A씨는 “유튜브를 보고 이 나라에 간첩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대한민국을 구하는데 손을 보태고 싶어 참가하게 됐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반대 측 집회 장소에서 50m쯤 뒤에서 광주지역 17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윤석열정권 즉각 퇴진·사회대개역 광주비상행동’이 주도하는 찬성 측 집회 준비가 한창이었다.
찬성 측 집회 예정 시각은 오후 4시. 시작까지는 아직 몇 시간 남았지만, 자리를 지키는 시민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위기감을 느낀 광주비상행동은 ‘광주시민께 드리는 호소’란 주제의 긴급 성명을 내고 집회 참여를 독려했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80년 오월 광주의 마지막 날은 도청을 사수하던 이들의 죽음이었지만, 그 죽음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살찌우는 자양분이 돼 부활했다”며 “다시는 ‘불법 내란이 불가능한 나라’를 위해 금남로를 시민들의 함성으로 뒤덮자”라고 말했다.
오후 3시30분쯤이 되자 금남로 일대 상황은 급변했다. 윤 대통령 탄핵을 찬성하는 시민들이 하나둘 모여들며 무대에서 5·18민주광장까지 이르는 400m 구간을 가득 메웠다. 주최 측은 오후 4시30분을 기해 시민 2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북구 용봉동 주민 박선미씨(44)는 “금남로에서 계엄을 옹호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어 아이들과 함께 왔다”고 밝혔다.
찬성 집회 무대 앞에는 가로 9m, 세로 6m의 거대한 태극기가 펼쳐졌다. 승리 선언 뒤 집회는 축제인양 변했다. 시민들은 5·18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대표곡인 ‘님을 위한 행진곡’을 목놓아 불렀다.
경찰은 겹겹이 차벽을 둘러 양측을 서로 차단했다. 충돌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반대 측 참가자 들 일부는 “구경만 좀 하자”며 찬성 측 집회장 진입을 시도하거나 거친 언사로 ‘도발’에 나섰다. 흥분한 찬성 측 참가자들도 고성을 지르며 맞섰다
금남로에서 “탄핵 반대”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광주시민들은 물리력으로 대응하기보단 더 많은 시민들의 참여와 응원을 독려했다. 양측 집회는 그렇게 오후 7시쯤 ‘평화롭게’ 마무리됐다. 기우식 비상행동 대변인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광주 시민들의 함성으로 내란 지지 세력의 목소리를 뒤덮었다”라며 “광주시민의 위대한 승리”라고 말했다.
경찰은 논란을 의식해 “찬·반 집회 참여 인원을 따로 집계하지 않겠다”고 사전에 밝힌 바있다. 집회 뒤 경찰 관계자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했다”며 “성숙한 시민의식이 빛을 발하면서 집회가 비교적 잘 마무리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세이브코리아 측은 “반대 집회에 15만명 이상 참여한 것으로 추산된다”고 주장했다.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은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기가 어디라고 와’라는 시민들의 구호가 아직도 뚜렷하다”며 “5·18민주광장과 금남로를 지켜준 시민께 감사하며, 내란을 옹호하는 자들에게 ‘우리들의 광장’이 빼앗기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