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김하늘양(8)이 교사가 휘두른 흉기에 숨진 뒤 정부와 정치권은 앞다퉈 ‘하늘이법’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의된 법안 대다수는 각 시·도교육청이 ‘질환교원심의위원회’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정신질환으로 직무 수행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교원의 휴·면직 등을 심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학교 현장에선 사건 원인을 정신질환으로 좁혀 대책을 세우면 교사의 정신건강 치료 문턱을 높이는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6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보면 교육공무원법 개정안,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개정안, 학교보건법 개정안 등 10여건의 법안이 발의돼 있다. 교육공무원법 개정안 대다수는 질환교원심의위 법제화가 골자다. 현재 질환교원심의위는 시·도교육청 규칙에 담겨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정안들은 교육감 소속으로 질환교원심의위를 두고 교원이 정신질환 등으로 직무수행이 가능한지 심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학교장 등이 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하도록 했다. 정신질환 등으로 휴직했던 교원이 복직하려면 심의위를 거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정신질환이 있는 교원 중 교육활동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사람에 대해 학교장이 교원의 의사와 상관없이 임용권자에게 1개월 이상, 6개월 이내의 휴직을 요청하도록 하는 법안, 교육공무원 임용 결격사유에 ‘정신질환자’를 추가하는 법안도 발의됐다. 학교마다 학교전담경찰관을 의무 배치하는 법안도 있다.
교육부 대책도 국회 논의와 유사하다. 교육부는 질환교원심의위 법제화뿐 아니라 폭력성 등 특이증상으로 정상적 직무수행이 어려운 교원에 대해 일정한 절차를 거쳐 긴급분리, 직권휴직 등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교원 신규 임용 시 정신건강 진단을 시행하고 재직 중인 교원도 주기적인 심리검사를 진행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교육부는 늘봄학교에 참여한 모든 초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이 귀가할 때 귀가 도우미 인력이 학생을 인솔해 보호자 또는 보호자가 사전에 지정한 대리인에게 대면 인계하는 체계를 갖추겠다고도 했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17일 당정협의회를 열고 하늘이법 추진 방향을 논의한다.
대전시교육청은 고위험군 교사가 질병 휴직 뒤 조기 복직하는 경우 질병휴직위원회를 여는 방침을 세웠다. 고위험군 교사가 2회 이상 질병 휴직을 한 뒤 복직할 때는 질환교원심의위 개최도 의무화한다.
교사들은 하늘이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한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중증도와 관계없이 정신질환을 앓았다는 이유만으로 배제될 수 있고, 심의위 회부 사실만으로 낙인이 찍힐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30대 초등학교 교사는 “정신질환의 범위·심각도에 대한 객관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순히 정신질환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제된다면 교사들이 정신건강 문제를 솔직하게 표현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질환교원심의위 구성도 쟁점이다. 정치권 일각에서 학부모, 학생까지 위원으로 넣는 방안이 거론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강원도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부모 위원이 해당 교사에게 불만을 품고 있는 경우 개인적 복수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며 “심의위 내용이 외부로 노출되면 교사 능력과 관계없이 ‘신뢰할 수 없는 선생님’으로 낙인 찍힐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은 교사들 우려를 염두에 두고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새로운 제도가 치료 기피나 악성 민원 증가 등 부작용을 초래하지 않도록 신중히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현장 의견 수렴 뒤 늦어도 다음달 초까지 최종안을 마련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