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주한 중국대사관 앞. 마블 캐릭터 ‘캡틴 아메리카’ 복장을 한 40대 남성이 경비를 서는 경찰관에게 시비를 걸었다. “시진핑 XXX 해볼래. 못해?” “말도 좀 어눌한 것 같아. 한국 분 아닌 것 같아. 나, 얘 패도 되죠? XX니까.” 그는 “중국대사관 테러할 것”이라 외친 후 대사관 진입을 시도하다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중국인 딱지 붙이기’가 12·3 비상계엄 이후 보수 세력을 집어삼킨 극우의 담론과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자신의 견해와 다른 시민을 중국인, 화교 혹은 친중으로 몰아간다. 이제는 아무 말 수준의 ‘기승전중국인’ 화법까지 등장했다.
윤석열 탄핵심판 변론이 열리는 헌법재판소 앞에서는 중국인을 색출하려는 ‘애국시민’의 불심검문이 종종 이뤄진다. 이들은 북촌 한옥마을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에게 다짜고짜 “중국인이냐”고 윽박지른다. 아무나 붙잡고 “한국말 해봐” “주민증 까봐”라는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윤석열 지지자들은 탄핵 찬성 집회에 몰려가 천안문 사건 관련 노래를 틀기도 한다. 탄핵 찬성 집회를 주도하는 중국인을 색출하겠다는 의도다. ‘이 노래를 틀었더니 중국인 참석자들이 귀신같이 도망갔다’는 블랙코미디급의 가짜 무용담도 난무한다.
이처럼 극우 유니버스에서 한국은 이미 중국의 속국이다. 보수 여론을 주도하는 유튜브 채널과 온라인 커뮤니티, 단체대화방을 보면 그렇다. 한국의 국회, 헌법재판소, 법원, 국가정보원, 경찰, 검찰, 언론은 지금 중국인이나 화교의 손아귀에 있다.
당연히 어떠한 사실도, 근거도, 논리도 없다. 가짜뉴스와 혐오가 빚어낸 망상이라서 애당초 토론은 불가능하다. 윤석열 형사재판 1심 재판장의 이름을 트집 잡아 화교라는 이들에게 어떤 반박이 가능하겠는가.
‘차이니즈플레이션’의 광기 어린 에너지는 결국 같은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까지 잡아먹는다. 배인규 신남성연대 대표는 탄핵 찬성 집회를 찾아 참석자의 한국어 발음과 입 모양을 근거로 중국인 색출을 시도했던 인물이다. 그런 배 대표도 화교로 몰렸다. 서울서부지법 난입·폭력 사태 당시 현장 동영상을 내려달라고 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런 비상식적 현상을 증폭시킨 시작과 끝 모두에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이 있다. 그는 쿠데타 실패 후 ‘비상계엄이 중국의 안보 위협과 부정선거 개입에 맞선 조치’라는 식으로 둘러댔다. 윤석열은 지난해 12월12일 담화에서 계엄 배경을 설명하며 “중국인들이 드론을 띄워 미국 항공모함과 국정원을 촬영하고, 중국산 태양광 시설들이 전국 삼림을 파괴한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측은 “중국이 우리나라 선거에 얼마든지 관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야당이 친중인 걸 고려하면 비상계엄이 불가피했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윤석열의 주장은 극우·보수의 중국인 몰이에 기름을 부으며 폭력을 부추기고 있다. 국민의힘도 혐중 부채질에 발맞췄다. 김민전 의원은 “언론은 위안화, 그리고 한국말 하는 화교에 다 넘어갔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유상범 의원은 “탄핵 찬성 집회에 중국인이 대거 참석하고 있다”고 했다. 이렇다 보니 계엄 당시 선관위 연수원에 감금된 민간인 90여명을 ‘미군이 부정선거 개입 혐의로 체포한 중국인 간첩’이라고 둔갑시킨 스카이데일리는 극우 세력의 민족 정론지가 됐다.
이런 식이면 극우식 ‘친중 감별’에 윤석열도 예외가 아니게 된다.
윤석열은 지난해 2월7일 KBS 대담에서 “대한민국과 중국 간 기본적인 국정 기조, 대외관계 기조는 다르지 않다”고 발언했다. 비상계엄 직전인 지난해 11월15일에도 마찬가지였다. 페루 리마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며 “양국이 상호 존중, 호혜, 공동 이익에 기반해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내실 있게 발전시켜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12월26일 크루즈선을 타고 오는 중국인 단체관광객에 대해 무비자 입국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심지어 윤석열이 중국 전통술인 백주(고량주)를 좋아한다는 보도들도 있다. 탄핵 인용 후 ‘쓸모’를 다한 윤석열도 이러다가 ‘알고 보니 중국인’이 될 판이다.
엉뚱한 상상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역사가 증명한다. 혐오와 허위에 기반한 선동의 말로는 자기 파멸이었다.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주자파를 색출하려는 홍위병의 광기는 자신의 부모, 4인방을 넘어 결국 마오쩌둥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