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의 비극을 보며 ‘프리랜서냐, 근로자냐’라는 말이 인상깊었습니다. 정규직만큼, 어쩌면 정규직보다 더 영혼을 실어 일하는 비정규직들에 대한 처우 개선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13년차 방송작가 A씨)
예능 방송작가들이 ‘노동자’처럼 일하면서도 대다수가 프리랜서 형태로 계약을 맺고, 3명 중 1명은 계약서조차 받지 못하고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센터장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능 방송작가의 노동권 어떻게 보호할까’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서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지난해 11월 1일부터 17일짜기 전·현직 예능 방송작가 186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일할 때 계약서를 전혀 받지 못했다’는 응답이 36.6%(68명)에 달했다. ‘방송작가표준계약서를 썼다’는 응답은 25.3%(47명), ‘근로계약서를 썼다’는 응답은 21.0%(39명), ‘용역·위임·위탁계약서를 썼다’는 응답은 17.2%(32명)였다.
불안정한 계약은 고용불안으로 이어졌다. 최근 제작한 예능에서 근무기간은 평균 14.7개월이었고, 근무기간이 8개월 미만인 경우가 57.0%(106명)로 절반을 넘었다. 계약종료 사유를 물은 결과 ‘프로그램 제작이 종료돼서’가 48.3%(56명)로 가장 많았고, ‘프로그램 편성 변경·폐지 등’이 14.7%(17명)로 뒤를 이었다. 한국고용정보원 자료를 보면 전체 노동자 중 ‘계약만료·공사종료’로 계약이 종료된 경우는 15.2%로 예능 방송작가에 비해 낮다.
응답자들의 주 평균 노동시간은 53.8시간이었고, 주 52시간 이상 일하는 이들이 43.0%(80명)에 달했다. 주 평균 휴일은 1.5일이었는데 휴일이 1일 이하라는 응답이 48.4%(90명)였다. 실질적인 평균 월 소득은 281만7000원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업무 지시·통제를 받는 등 실질적으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처럼 일했다. 응답자의 72.6%(135명·복수응답)는 업무 지시 및 결정 주체가 메인작가라고 답했다.
사용종속관계를 판단할 수 있는 요소를 물으니 ‘재택 중에도 업무 지시가 오면 최대한 빠르게 해결해야 했다’에 95.7%가 ‘그렇다’고 답했다. ‘개인적 사유로 일을 못하는 날이 생기면 미리 상급자에게 승인을 얻어야 했다’는 93.0%, ‘고정된 회의나 촬영 일정에 참석할 의무가 있었다’는 91.9%였다.
‘업무의 내용에 대해서 결정권이 상당히 많았다’에는 75.8%가 부정 응답을 했다. ‘근무 시간과 장소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었다’에는 73.7%가, ‘쉬고 싶을 때 쉬어도 직접적인 불이익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에는 80.1%가 아니라고 답했다.
김 센터장은 “작가라는 호칭 이면에 실질적인 노동 양상은 절대적으로 종속돼 있음이 자명하다”며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언제든 자를 수 있는 고용불안과 노동법 테두리 밖에 놓여있는 권리의 박탈을 무기로 언제든 부를 수 있는 상시 대기조 노동, 비효율적이고 모호한 업무 관리가 가능해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