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살이에서 오래 기억해야 할 중요한 계기를 나무를 심어 기념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남다른 일이 아니다. 이른바 기념식수다. 별다른 기록 방법이 없던 예전에는 오래 기억할 일을 사람보다 오래 살아남는 나무를 심어 상징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었다.
땅끝마을 해남, 성내리 해남군청 앞에 서 있는 ‘해남 성내리 수성송(守城松)’이라는 특별한 이름의 나무도 그런 나무다. 조선 중기에 해남현감을 지낸 변협(邊協)이 심고, 해남 사람들이 고이 지켜온 장한 나무다.
나무 높이 12m, 가슴높이 줄기둘레가 4.5m인 이 나무는 바닷가에서 잘 자라는 곰솔이어서 해남 지역에서는 쉽게 볼 수 있다. 굵은 외줄기가 곧게 오른 뒤, 여러 개의 가지로 나뉘어 넓게 퍼진 모습이 옛사람들의 강인한 기개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 나무는 평범한 해남 사람들의 용맹함을 기리기 위한 나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460여년 전 남해안 지역에서 벌어진 ‘달량진 사변’ 때 일이다. 일본 대마도 해적들이 70여척의 배를 몰고 해남성 주위를 약탈했던 변란으로 ‘을묘왜변’(乙卯倭變)이라고도 부른다.
조정에서는 이 지역에 전라도 병마절도사 원적(元績)을 급히 파견했지만 그는 제대로 대항하지 못하고 항복하려다가 왜적의 의해 죽음에 이르고 말았다.
그때 해남현감 변협이 떨치고 일어섰다. 변협의 용맹함이 앞장서기는 했지만, 내 땅의 평화는 내 손으로 지키겠다는 해남 백성의 투지를 바탕으로 한 싸움이었다. 현감 변협과 해남 백성들은 마침내 왜적을 몰아내고 평화를 되찾는 데에 성공했다.
그리고 얼마 뒤 장흥부사로 떠나게 된 변협은 해남을 지켜낸 공이 모든 백성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해남 지역을 떠나더라도 해남 백성들이 한마음으로 마을의 평화를 지켜낸 기상을 오래 간직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무를 심으며 ‘수성송’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위대한 백성과 훌륭한 지도자의 상징으로 남은 큰 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