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상식이 모두의 상식일 수 없다

2025.02.17 21:40 입력 2025.02.17 21:41 수정

2025년 1월30일, 워싱턴 인근 공항에서 아메리칸항공 여객기와 미 육군 헬리콥터가 충돌해 67명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했다. 이 충격적인 사고 소식이 전해지기 무섭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두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을 들었다.

그는 사고 직후 열린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이전 바이든 정부에서 시행한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이 항공 안전을 저해했다고 비판했다. 다양성을 우선시해 부적격한 인력이 채용되었을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러자 곧장 정확한 사고 원인 조사도 끝나지 않았는데 그렇게 발언한 근거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그의 답변은 “Because I have common sense(나는 상식을 지녔기 때문이다)”였다.

트럼프는 “불행히도 많은 사람이 자신처럼 상식을 지니지 못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분명 DEI 정책을 지지하고 실행한 다수의 사람을 향한 비난일 테다. 그는 대선 캠페인 시절 DEI 정책이 기업의 자유시장 원칙을 위배하는 ‘역차별’이라 강도 높게 비판해왔다. 그의 상식이 초래한 충격적 소식은 여기서 끝나질 않았다. 세계보건기구 및 파리협정 탈퇴에 이어 최근 미국 국제개발처(USAID) 폐쇄 및 원조 중단을 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이에 대해 세계적 의학 학술지 랜싯에는 2025년 2월8일 ‘미국발 대혼란 : 보건과 의학에 맞서다’라는 사설이 실렸다. 편집자는 현재 에이즈 구호 기금이 중단되고, 수많은 보건인력이 해고되었으며, 클리닉이 폐쇄되었음을 강조하며 이에 대한 국제보건공동체의 견고한 대응을 요청했다.

랜싯 사설에는 트럼프 외에 일론 머스크가 언급됐다. 그가 미국 국제개발처를 “악의적인” “범죄 조직”이라 폄하하고, 이를 축소 혹은 폐지하기 위해 허위 정보를 유포하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머스크는 현재 ‘정부효율부(DOGE)’의 수장을 맡아 정부 기관의 자금 및 인사 시스템에 접근해 무자비한 비용 절감 및 인력 감축을 단행하고 있다. 그 결과,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 원조에 의존해 운영되던 여성과 아동을 위한 필수의료 서비스가 중단됐다. 시리아의 알홀(Al-Hol) 난민캠프에서 일하는 직원 수백명이 업무 중단 통보를 받고, 캠프에 머무는 4만명의 여성과 어린이는 인도적 지원의 길이 막혔다. 이들을 돕는 인도적 지원이 어떻게 악의적 ‘범죄’가 될 수 있을까. 트럼프와 머스크의 상식은 정말 모두의 상식과 같을 수 없다.

그들의 상식에 기반한 일련의 발언과 행보를 보고 있자면 마치 자신들이 더욱 똑똑하고, 정직하며, 지도력이 뛰어나다고 ‘과학적으로 입증’이라도 된 듯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트럼프가 구체적 증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국제개발처가 “엄청난 규모의 사기를 저지르고 있다”고 확언하는 모습이 그러하다. 트럼프가 자신은 남들과 달리 ‘상식’을 지니고 있고 다수의 사람은 불행히도 그렇지 못하다고 주장하는 모습에는 자신이 우월한 종이라는 확신이 깔린 듯하다.

식민주의 시절 목격했던 서구 백인의 우생학적 인종주의와 무엇이 다를까. 히틀러가 그러했듯 말이다. 그렇게 보면 머스크가 히틀러를 옹호한 것도 이해할 수 있다.

100년 전 미국에서는 인종주의가 강력한 사회적 규범이었다. 이 시기 이러한 차별에 대항한 학문적 실천을 한 일군의 학파가 있었다. 바로 1900년대 미국에 문화인류학을 뿌리내린 인류학자 프란츠 보아스와 그의 대표적 제자였던 루스 베네딕트와 마거릿 미드가 그 중심에 있었다.

보아스 학파가 강조한 것은 ‘문화 상대주의’였다. 초기엔 모든 것을 상대적으로 보면 어떻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냐며 많은 오해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보아스 학파가 강조한 것은 “타인의 삶을 공감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삶의 태도였다. 즉, 진짜 ‘상식’으로의 전회를 설파한 것이다.

보아스의 고국인 독일에서 히틀러가 권력을 잡았을 때 나치 열성분자들이 가장 먼저 태워버린 저서에 그의 것도 포함되었다고 한다. 우리의 방식만 상식적이고 도덕적이라는 믿음은 과학, 합리성, 종교의 언어로 표현될 때 강력한 매력을 발산한다. 파시즘의 역사가 그러하듯 말이다.

트럼프와 머스크가 효율성의 이름을 빌리듯, 지금 이곳 한국에서도 사실과 종교의 언어를 빌려 자신들의 ‘상식과 도덕’을 설파하는 이들이 있다. 소리를 지르며 절규한다고, 사실이 아니라고 아무리 항변해보아도 시민들의 상식에 그것은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상식에는 ‘공감’이 없기 때문이다.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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