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에는 관세, 한 손에는 에너지···지정학적 지렛대로 LNG 팔기 나선 트럼프

2025.02.18 16:44 입력 2025.02.18 17:16 수정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통상 전략에서 핵심 키워드는 ‘관세’와 ‘액화천연가스(LNG)’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가 단순한 통상 정책이 아닌 지정학적 무기로 활용되는 것처럼, LNG 역시 단순히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에너지 품목만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무기 삼아 세계 각국에 미국산 LNG 수입 확대를 압박하고 나선 데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 등 지정학적 이슈가 연동돼 있다.

미국이 상호관세와 철강·알루미늄 25% 관세를 예고한 후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통상 압력 완화를 위한 고육책으로 미국산 LNG 수입 확대를 약속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미 국무부는 지난 15일 한·미 외교장관 회담 후 내놓은 입장문에서 “조선·반도체·에너지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려는 노력, 특히 LNG 수출 증가를 환영한다”고 강조했다. 한·미·일 3국 외교장관 회담 후에도 “LNG 분야에서 상호협력을 증대해 에너지 안보를 강화할 계획”이라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이에 발맞춰 미국산 LNG 수입 확대와 더불어 트럼프 대통령이 공들이는 450억달러 규모의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참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왼쪽)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가운데),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과 회담을 했다. 외교부 제공

조태열 외교부 장관(왼쪽)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가운데),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과 회담을 했다. 외교부 제공

현재 세계 1위인 미국의 천연가스 생산량은 2023년 기준 1조3500억㎥로 2위인 러시아의 두 배, 3위인 이란의 다섯배에 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정부가 환경에 미칠 영향 등을 우려해 중단시킨 LNG 프로젝트를 부활시켜 2030년까지 수출량을 두 배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다만 현재 미국의 수출 전망이 그리 녹록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러시아산 석유·가스에 대한 국제 사회 제재가 시행된 후 그 반대급부로 유럽의 최대 LNG 수출국이 됐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공언처럼 러시아와의 종전 협상이 진행되면, 대러 제재 일부가 해제되면서 미국산 LNG 수요에 변동이 올 수 있다. 독일 등 서유럽 국가들은 종전 후에도 러시아산 가스로 돌아가려 하지 않겠지만, 동유럽 국가 일부는 미국산 LNG 대신 러시아 가스를 택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유럽연합(EU)을 향해 “미국산 석유·가스 수입을 대규모로 늘리라”고 직접적으로 요구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계속되는 트럼프 정부와 유럽 국가 간의 갈등도 주목할 요소다. 이효영 국립외교원 교수는 “EU는 대러 제재 해제에 반발할 것이지만, 미국은 수출물량의 급격한 증가로 자국 내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제재 일부를 해제해 국제 LNG 공급량을 적정선에서 조절하려 할 것”이라면서 “이는 트럼프 정부와 EU 간 또 다른 (무역) 마찰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럽에서의 수요 감소를 고려해 새로운 LNG 수출처를 찾고 있는 미국이 동아시아로 눈을 돌리고 있는 데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기존 주요 공급처인 호주·카타르 대신 미국산 LNG를 수입하려면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더 긴 운송 거리를 감당해야 한다. 이 때문에 미국은 미국산 LNG 구매가 중국을 견제하고 역내 에너지 안보를 지키는 길이라는 지정학적 논리까지 끌어오고 있다. 최근 미 싱크탱크인 ‘대서양협의회’(Atlantic Council)는 한·일의 주요 에너지 수입 경로인 말라카 해협이 남중국해와 맞닿아 있어 중국발 지정학적 위험에 노출돼 있는 만큼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가진 미국과 LNG 무역을 심화함으로써 베이징에 대한 억제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루이지애나 항구로 들어가는 LNG 유조선.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루이지애나 항구로 들어가는 LNG 유조선. 로이터연합뉴스

공화당 소속인 댄 설리번 상원의원(알래스카)도 지난 5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세미나에서 “우리의 아시아 동맹인 일본, 한국, 대만이 카타르에서 가스를 많이 수입하는데 그것은 큰 실수”라면서 “카타르는 하마스를 지원하기에 믿을 수 없고, 중국이 카타르에 입김을 넣어 가스 수출을 중단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미·일의 미국산 LNG 협력은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한 대응책도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대미 무역 흑자 문제를 해소하려면 수출을 줄이기보다 수입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 하므로, 미국산 LNG 수입을 늘리는 것이 관세 협상에서 제시할 수 있는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면서 “그러나 모든 나라가 같은 카드를 제시할 것이어서 LNG 수입 확대가 협상의 충분조건이 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과 유럽 상황을 고려할 때 미국이 LNG 수출 시장에서 마냥 유리한 입지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고려해서 미국과의 협상 전략을 짤 필요는 있다”고 지적했다.

많이 본 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