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대신 ‘하악질’하는 고양이···자아 강한 다섯 동물의 대홍수 시대 생존기 ‘플로우’

2025.03.09 15:29 입력 2025.03.09 21:29 수정

애니메이션 <플로우>에서 고양이, 강아지, 뱀잡이수리가 배를 타고 여정을 떠나고 있다. 판씨네마 제공

애니메이션 <플로우>에서 고양이, 강아지, 뱀잡이수리가 배를 타고 여정을 떠나고 있다. 판씨네마 제공

고양이는 혼자여도 괜찮다. 함께 살던 인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홀로 집을 지키는 신세지만, 도도한 걸음걸이에선 외로움을 한 톨도 찾아볼 수 없다. 여유롭게 숲을 거니는 그의 노란 눈은 그저 호기심과 경계심을 오가며 빛난다.

그러던 어느 날 홍수가 세상을 덮친다. 물웅덩이를 사뿐사뿐 피해서 걷던 고양이는 속절없이 물에 휩쓸린다. 살기 위해 버둥대다가 버려진 배 한 척에 기어오른다. 안도는 잠시, 불청객이 배에 자꾸 따라 탄다. 해맑게도 졸졸 따라다니는 강아지, 무던한 카피바라, 욕심 많은 여우원숭이, 초연한 뱀잡이수리까지. 애니메이션 <플로우>는 종도 울음소리도 다른 동물들이 망망대해에서 함께 겪는 모험을 담은 로드무비다.

<플로우> 스틸 컷.판씨네마 제공

<플로우> 스틸 컷.판씨네마 제공

<플로우>는 지난 2일(현지시간)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독립 애니메이션으로는 최초로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은 작품이다. 애니메이션 명가가 상을 독차지하던 부문에서 <인사이드 아웃2>(디즈니 픽사)와 <와일드 로봇>(드림웍스) 등을 제치고 영광을 차지했다. 라트비아의 감독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이 프랑스·벨기에 제작진과 합작해 만든 이 영화는 350만유로(약 55억원)의 저예산으로 생생한 모험담을 스크린에 옮겼다.

동물을 의인화하는 여타 애니메이션과 달리 <플로우> 속 동물들은 인간의 말을 하거나 두 발로 걷지 않는다. 이름도 없다. 강아지는 월월 짖다가 헉헉거리며 고양이의 곁을 따라다닌다. 고양이는 질색하며 ‘하악질’을 한다. 애니메이션은 실제 동물들의 습성과 움직임을 사실적으로 구현했다.

질발로디스 감독은 ‘동물이 동물답게 행동하도록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플로우>를 시작했다고 한다. 동물의 울음소리도 사람이 흉내 낸 것이 아닌 실제 동물 울음소리를 사용했다. 행동과 눈빛만으로도 동물들 간의 유대가 생겨나는 것이 보인다. 재난 상황에서 이들이 서로를 구하기 위해 하는 행동들은 백 마디 말보다 확실한 울림을 선사한다.

라트비아 리가 자유 기념비 앞에 <플로우> 속 고양이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이 설치물은 오는 4월1일부터는 라트비아 시청 앞 광장으로 자리를 옮겨 전시된다. AFP 연합뉴스

라트비아 리가 자유 기념비 앞에 <플로우> 속 고양이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이 설치물은 오는 4월1일부터는 라트비아 시청 앞 광장으로 자리를 옮겨 전시된다. AFP 연합뉴스

<플로우>는 앞선 지난 1월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도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았다. 아카데미상도, 골든 글로브상도 라트비아 영화 사상 최초 수상이다.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 자유 기념비 앞에 <플로우> 속 고양이의 모습을 본뜬 조형물이 설치될 정도로 이 영화는 라트비아의 국가적 자랑이 됐다.

영화는 어떻게 평단을 사로잡았을까.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그 사이로 비추는 햇살, 흐르는 계곡물처럼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의 묘사가 탁월하다. 홍수로 시작되고 끝나는 이야기인 만큼 ‘물’에 대한 다양한 표현이 인상적이다. 고여서 피사체를 비추는 잔잔한 웅덩이부터 난폭하게 요동치는 흙탕물 같은 바닷물까지, 실사보다 실사 같은 ‘물’의 양태는 사건을 전개하는 배경이자 동력이다.

<플로우>의 고양이가 배 안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다. 판씨네마 제공

<플로우>의 고양이가 배 안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다. 판씨네마 제공

카메라는 고양이의 시점을 따라간다. 육지에서 거칠 것 없이 우아하게 내달리는 네 발이 속도감 있게 연출된다. 그러던 고양이는 사방을 둘러싼 물 앞에 주눅 든다. 종일 내리는 비에 푹 젖은 털,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다른 동물들에 한껏 예민해진다. 그러다가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며 성장해간다. 바다에 직접 뛰어들어 열대어 사냥에 나설 줄 알게 되고, 동료가 된 다른 동물들에게 곁을 내주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누군가(대개 강아지가) 치댈 때 싫은 내색을 하는 등 ‘고양이다움’을 잃지 않는다.

개성을 잃지 않는 건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여우원숭이는 시종일관 거울 등 물건에 집착하고, 카피바라는 속을 알 수 없게 느긋하다. 이들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본능을 포기하지 못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왜 저럴까?’ 하고 보다 보면, 저 동물은 저렇게 태어난 것이구나 받아들이게 된다. 그때부턴 그 행동들이 사랑스러워 보인다.

<플로우>는 공존에 대한 아름다운 우화다. 너무나 다른 동물 5마리가 한 척의 좁은 배에서 살길을 모색하면서도 본성을 잃지 않는 건, 전혀 다른 존재라도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엿보게 한다. 오는 19일 개봉.

<플로우>의 한 장면. 한 배에 탄 고양이, 강아지, 카피바라, 여우원숭이, 뱀잡이수리가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판씨네마 제공

<플로우>의 한 장면. 한 배에 탄 고양이, 강아지, 카피바라, 여우원숭이, 뱀잡이수리가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판씨네마 제공

많이 본 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추천 이슈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