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허영만 데뷔 50주년
전남도립미술관서 작품 세계 조망 전시
드라마·영화로 친숙한 작품 비롯
드로잉·취재자료 만날 수 있어
“이상무·이현세 있어 1등 못해 봐
밥 먹다가 냅킨에 고추장 메모도
소재에 대한 갈증, 오랜 활동 비결”
“원고지가 하얗거든요. 아무것도 없죠. 그 안에 내가 생각하는 걸 마음대로 채워 넣을 수 있어요. 지금 내 머릿속 생각을 그대로 독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으니까, 꿈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죠.”
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은 만화가 허영만은 ‘만화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한국 만화의 전설 허영만의 50년 만화 인생을 조망하는 전시 ‘종이의 영웅, 칸□의 서사’가 전남 광양시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열린다. 공립미술관에서 허영만의 작품세계 전체를 조망하는 전시가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5일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허영만은 “만화를 예술로서 보는 것이 한국에선 낯설다. 지금까지 쌓인 원고가 12만 장쯤 되는데, 이번 기회에 내가 어떤 족적을 남기고 하루하루를 살았나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날아라 슈퍼보드> <비트> <타짜> <식객>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화들이 허영만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서유기를 재해석한 작품 <날아라 슈퍼보드>가 히트하면서 만화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말귀를 잘 못 알아들어 엉뚱한 대답을 하는 사오정 캐릭터가 인기를 끌면서 동문서답을 하는 이를 ‘사오정’이라 부르는 말이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허영만의 작품은 종이를 넘어 대중매체 전반으로 확장됐다. 정우성·고소영 주연의 영화 <비트>, 김혜수·조승우 주연의 영화 <타짜>, 드라마 <식객>이 원작이 가진 이야기에 힘입어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만화가로서 늘 정상을 지켜왔지만 허영만은 “이상무 선생님, 이현세가 있어 한 번도 1등을 하지 못했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오래 그리다 보니 저만 남은 거 같아요. 항상 소재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지 않을까요. 밥 먹다가도 생각나면 메모하고, 식당에서 냅킨에 고추장으로 메모한 적도 있어요.”
이지호 전남도립미술관장은 “허영만은 일반 상업 매체로 한정됐던 만화의 소재와 주제의식을 확장하고, 철저한 자료수집과 취재로 한국 만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선구자”라고 말했다.
전시엔 12만 장의 방대한 원고와 자료 가운데 대표작들의 원화, 드로잉, 취재자료, 메모 등을 추려 선보인다.
50년간 꾸준히 시대와 함께 살아숨쉬는 만화를 그릴 수 있던 저력은 매일 새벽 네시에 일어나 작업실로 향하는 ‘루틴’에 있다. 그는 “새벽부터 여섯 시간 일하면 그날 하루는 충분히 일한 것이다. 저녁엔 사람들을 만나서 취재도 하고 술도 마신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기 위해 2차는 절대 가지 않는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전시엔 각 작품을 위해 취재한 기록들이 빼곡하다. 허영만은 “작품을 시작하고 가능한 한 자료를 최대한 수집한다”고 말했다. ‘취재’의 중요성을 알려준 에피소드도 전했다. <소고기 전쟁>에서 소의 윗니를 그려 넣었더니 독자가 댓글로 소는 윗니가 없다고 알려줘 수정한 일이다. “전 댓글을 보지 않습니다. 이유 없이 던진 댓글에 내가 가는 길이 바뀔 수도 있고 비수로 꽂힐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문하생이 꼭 봐야 한다고 해서 댓글을 봤더니 소 윗니가 없다는 지적이었어요. 확인해 보니 진짜 없더라고요. 취재를 그렇게 했어도 깜빡한 게 있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만화가가 됐지만, 학창 시절엔 대학에 진학해 화가가 되길 꿈꿨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사정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대학에 갈 줄 알았는데 아버지가 그러시더라고요. ‘누가 니 대학 보내준다더냐.’ 멸치어장을 운영하셨는데, 몇 년 동안 고기가 안 잡혀 코너에 몰린 상황이었죠. 그럼 난 만화를 그려야겠다 생각하고 가방에 교과서 대신 만화 그릴 재료를 넣고 학교에 갔죠. 서른세 살 때까진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가 굉장히 심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버지께 감사해요. 만화 하나만 평생 해올 수 있었고, 지금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허영만은 선 굵은 이야기로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작품 속에 녹여냈다. <각시탈>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각시탈 가면을 쓰고 일제에 저항하는 협객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1945년 해방부터 1986년 6·29 민주화 선언까지 격동의 근현대사를 풀어낸 <오! 한강>은 해방, 전쟁, 광복, 쿠데타, 민주화운동에 이르는 격변의 근현대사를 작가의 걸출한 연출력으로 그려낸다. <비트>에도 당시 청년세대가 겪던 사회적 문제가 반영됐으며, <타짜>에도 도박을 소재로 주인공들이 겪는 사회적 어려움을 그려냈다. 전시 2부 ‘시대를 품은 만화’ 전시된 <오! 한강> 속 장면들은 허영만의 뛰어난 그림 실력을 엿볼 수 있다.
종이 위에 그리는 그림만을 고집해 온 허영만에게 웹툰 중심으로 변화된 시장 상황은 도전적이다. 남몰래 준비해 온 웹툰도 있다.
“지금은 웹툰밖에 매체가 없잖아요. 서너 달 정도 연재할 분량을 준비해 놓은 게 있어요. ‘허영만’이란 타이틀을 빼고 다른 필명으로 연재를 해보고 싶어요. 웹툰에도 내 방식이 통하나 시험해보고 싶어요.”
그는 “네이버나 카카오에서 딱지 맞을 확률이 높다”며 “그럼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연재하면 된다”라며 웃었다.
허영만은 어떤 만화가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웹툰 작가들이 허영만 같은 종이만화 작가도 있었다, 이렇게 생각해 주면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생각 즉시 행동! 꾸물대지 마!” 전시장 한편에 옮겨다 놓은 허영만의 작업실에 붙어있는 메모다. 데뷔 50년 차 정상의 자리에 오른 허영만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내년엔 그의 고향인 여수에서 허영만만화기념관(가칭)을 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