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말들
다와다 요코·유라주 옮김
돌베개 | 228쪽 | 1만3000원
바움쿠헨은 흥미로운 케이크입니다. 단면에 나무테를 닮은 층을 지녀서 나무케이크라는 독어 이름을 지닌 바움쿠헨은 독일에서 유래했지만 일본에서 더 대중적으로 알려진 케이크거든요. 20세기 초 독일인 부부에 의해 일본에 처음 소개되었다는 이 케이크는 이제 결혼 답례선물로 널리 쓰일 만큼 일본 문화에 깊이 뿌리내렸습니다. 일본에 다녀오는 관광객 중에는 벚꽃 바움쿠헨이나 멜론 바움쿠헨처럼 일본식으로 변형된 케이크를 특산물로 사 가지고 오는 이들도 많이 있지요. 현실이 이렇다면 일본의 바움쿠헨은 정통 독일 케이크를 훼손한 것일까요, 아니면 더 풍요롭게 만든 것일까요?
이런 질문이 떠오른 것은 다와다 요코의 <여행하는 말들>을 최근에 읽었기 때문입니다. 모국어인 일어와 외국어인 독어로 소설을 써온 작가의 에세이집답게 이 책에는 언어를 화두로 한 글들이 묶여 있습니다. 이 책의 첫 장에는 프랑스어로 소설을 쓰는 세네갈 작가들과 프랑스인 프랑스문학 연구자에 관한 에피소드가 등장합니다. 다카르에서 열린 한 심포지엄에서 세네갈 작가들을 오랫동안 아끼고 원조해왔던 이 프랑스문학 연구자는 세네갈 작가들에게 “프랑스어를 망치지 않도록” 글을 쓸 것을 요청하며 “안 그러면 역시 저건 아프리카인이 쓰는 프랑스어라고 무시당할 뿐”(24쪽)이라고 조언합니다.
하지만 다와다 요코는 한 베를린 출신의 젊은 연구자의 말을 빌려 “프랑스어를 어떻게 쓸지는 전적으로 세네갈 작가의 자유”(24쪽)이며 어떤 언어가 모국어라는 이유만으로 그 언어에 결정적 소유권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죠. 그리고 다와다 요코는 자의든 타의든 모국어 바깥에 놓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의 특별한 가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어떤 언어로 소설을 쓰는 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흉내” 내거나 그 언어의 모국어 화자들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언어의 모습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에 잠재하지만 아직 누구도 보지 못한 모습을 끌어내 보이는”(26쪽) 행위이기 때문이죠.
이렇듯 다와다 요코는 책의 곳곳에서 외국어로 말하고 쓰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녀에게는 원어민처럼 완벽한 발음으로 유창하게 말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낯선 언어를 배우고 외국어로 말하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재발견하고 새로운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경험을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외국어를 꽤 오랫동안 배워온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외국어로 말하는 일이 이전까지 가지고 있던 모국어 중심의 인식 틀을 넘어설 수 있게 해준다는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은 모국어로 지어진 집의 견고한 벽을 허물고 바깥으로 향하는 문을 내는 작업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낸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을 때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얼마나 흥미진진한 모험으로 가득할까요?
<여행하는 말들>은 우리에게 모국어 밖에서만 누릴 수 있는 눈부신 자유와 기쁨의 비밀에 대해 알려주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