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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적 상황 교묘히 비트는 플롯의 쾌감 ‘롱나이트’

2021.08.20 14:31
김유익 재중문화교류활동가

<長夜難明 롱나이트 The long night>

즈진천(紫金陳)


[김유익의 광저우 책갈피]중국적 상황 교묘히 비트는 플롯의 쾌감 ‘롱나이트’

2020년 중국인들도 ‘팬데믹 집콕무료함’ 바이러스를 견디기 위한 백신으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선택했다. 가장 높은 평점을 받은 작품들은 미스터리 드라마 <은밀한 구석>과 <침묵의 진상>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원작은 모두 중국의 히가시노 게이고로 불리는 쯔진천의 작품이었다. 그의 ‘추리의 왕’ 시리즈 3부작 <증거 없는 죄> <배드키즈> <롱나이트> 중 후자의 두 장편소설이다. 그의 첫 작품도 이미 2017년 드라마로 개작돼 성공했다. 중국의 넷플릭스로 불리는 ‘아이치이’는 이때 그의 나머지 소설판권도 사들여 드라마를 준비해왔다. 이들은 감수성이 남다른 MZ세대의 젊은 제작진을 대거 기용하고 과감하게 투자해 30회 이상으로만 수익이 보장되는 기존의 중국작품들과 달리 10여회 기준의 영미 드라마 제작모델을 따랐다. 덕분에 군더더기 없는 빠른 전개와 높은 작품성을 확보해 경쟁사들을 따돌릴 수 있었다. 중국에서도 이들 OTT가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기존의 인기 위성TV 등을 제압하게 된 배경 중 하나이기도 하다.

쯔진천은 사회파 추리소설가로 분류된다. 민감한 소재를 과감히 다루고 있을 뿐 아니라, 묘사하는 범죄의 양태는 보수적인 중국 사회의 윤리적 통념을 월등히 뛰어넘는다. 결손가정과 청소년범죄가 주제인 <배드키즈>의 전교 1등 주인공 중학생은 후반으로 갈수록 냉혹한 살인마로 변신하고, <롱나이트>에서 빈곤농촌지역 아동성애 성상납을 매개로 부패한 고위관리와 결탁한 지역재벌은 공권력을 수족처럼 부리며 진상을 파헤치려는 주인공들을 모해하거나 협박한다.

두 작품의 드라마판은 소설에 비해 수위가 많이 낮아진 공통점이 있지만 각기 다른 이유로 호평을 받았다. 거의 다시 쓰인 <은밀한 구석>은 선악 구분이 명확한 원작과 달리 다양한 방식의 심리묘사를 통해 인물들이 보다 입체적으로 구현되고, 종합적 예술성도 높아졌다. 과도하게 부정적인 결말 등이 검열을 통과할 수 없다고 판단돼 교육과 성장으로 초점이 옮겨졌고, 심지어 엔딩은 권선징악을 포함한 이중의 환상으로 암시될 뿐이다. 유교문화의 금기어인 친부살해가 아버지를 죽인 악인에 대한 복수의 서사로 뒤바뀐 것도 익숙한 트릭이다. 중국에선 책임감 있는 천재적 개작으로 평하지만, 나는 차라리 한국판 넷플릭스 리메이크 버전으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것을 상상하게 된다. <침묵의 진상>은 형식이 고전적이지만, 정부와 공산당 고위층에 존재하는 부패세력에 관한 소재를 드라마화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책이 출간된 2017년엔 ‘인민의 이름’이라는 프로파간다성 반부패 드라마가 화제가 됐고, 촬영 배경이 원작과 달리 충칭으로 정해진 것이 암시하듯 아마도 보시라이나 저우융캉의 사례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롱나이트>에서 기소권과 수사권 분리모델이 생생히 묘사된 중국의 검경관계나, 거악에 맞서기 위한 수단으로 시민여론과 언론 대신 고도로 위계화된 체제 안의 절차만이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채널이라는 중국적 상황이 만들어내는 플롯이 흥미롭다. 주인공인 열혈 청년검사는 이를 위해 전도유망한 커리어, 애인, 가족, 청춘 끝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바보’인데, 쯔진천은 이를 자신의 가치관인 맹자의 ‘적자지심(赤子之心)’이라 고백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유시민 작가가 고인이 된 한국의 어떤 정치가에 대해 “단심(丹心)을 가진 사람이었다”라고 평한 것과 같은 뜻이다. <롱나이트>는 2018년 <동트기 힘든 긴 밤>이란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 출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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